백은주 씨 SNS에서 삼성전자서비스 농성지원
페이스북 펀딩으로 ‘만원의 만찬’ 캠페인 벌여

지난 5월 서울 서초동 삼성 본관 앞에서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노숙농성을 벌였다. 기한을 정하지 않고 시작한 노숙농성의 환경은 열악했다. 수 백 명의 노동자들이 끼니를 때우는 정도의 식사를 하며 노동조건개선과 노조활동보장을 외쳤다. 이들 옆에는 농성장을 찾아 마음을 나누는 시민자원봉사자들이 있었다.


백은주 씨도 SNS로 노숙농성 소식을 듣고 이곳을 찾았다. 백 씨가 이들이 힘을 내도록 응원한 방법은 ‘따뜻한 밥 한 끼’다. 온라인 친구들과 소식을 나누고 기금을 모아 정성을 다해 1000명 분의 식사를 마련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사는 41일간의 노숙농성 끝에 기본단체협약을 체결했다. 분명 ‘밥힘’의 영향도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백은주(42)씨는 청주 분평동에서 유기농식품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시민단체나 정당활동을 하고 있지 않지만 SNS를 통해 전국 곳곳의 친구들과 소통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마흔이 다 돼서 페이스북을 시작했는데 그곳에서 다른 세상을 만났다. 그동안 일상에 파묻혀 현실을 모르고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농성현장을 찾아 자원봉사를 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이후 백 씨는 형편껏 후원을 하는 것 외에 짬을 내어 현장을 찾는 일도 꾸준히 하고 있다.

“2012년 1월 경 부평의 콜트콜텍 현장소식을 전해 듣고 마트에서 겨울파카와 먹을거리를 사들고 방문했던 것이 처음이었다. 일 년이 지나 농성을 계속하고 있는 분들을 보러 갔는데 그 파카를 입고 계셨다”며 현장에 가보면 작지만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고 전했다.

매장을 찾은 손님을 환하게 웃으며 맞이하는 백 씨의 티셔츠에 새겨진 글씨가 눈에 띄었다. ‘노동자가 없으면 음악도 없고, 음악이 없으면 삶도 없다’. 이곳 청주에서 아직도 진행 중인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모습이다.

시민이 차린 밥상, ‘밥힘’ 불끈

백 씨는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노숙농성중인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과 한 끼 따뜻한 밥이라도 해서 같이 먹자는 생각을 전했다. ‘만원의 만찬’이라는 이름의 펀딩에 150여명이 참여했다. 모인 기금으로 온라인 친구들과 함께 1000명분의 밥·국·반찬들을 만들 수 있었다. 조리할 수 있는 식당공간을 제공한 분이 있어 밤 시간 동안 준비했다. 무의탁노인 무료급식을 하는 해방촌성당에서 그릇을 빌려 쓰고 설거지까지 마쳤다.

“한 끼 식사를 준비하려 했으나 기금이 좀 많이 모여 세 끼의 식사를 마련할 수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온라인 친구의 친구들이 만원도 내고 십 만원도 냈다”라며 일련의 과정을 담담하게 말했지만, 보이지 않는 손들의 저력을 확인하게 하는 기적 같은 사건으로 보였다.

백 씨는 “자원봉사를 하면서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일인가를 먼저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가끔 마음이 앞서 현장 상황에 맞지 않는 지원을 하겠다고 해서 곤란한 경우도 생긴다”며 봉사를 하는 것에도 세심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백 씨는 “밀양 송전탑·유성기업·삼성전자서비스·콜트콜텍 등 사회적 파업이 진행되는 곳은 모두 긴급구호 현장”이라며 고공농성을 하고 장기파업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간 무심히 살아온 것에 죄책감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웃이 행복하지 않은데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그가 희망버스를 타는 이유가 됐다.


청주 토박이 백 씨는 대학에서 임상병리학을 공부했지만 전공을 살리지는 못했다. 학원 강사로 또 작은 식품가게를 운영하며 평범함 속에 사소한 즐거움을 누리며 살던 그가 최근 노무사 공부를 해 볼 계획을 세웠다.

전국 파업현장의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회적파업연대기금’에 대해 알게 된 이후, 지역의 노동현장과 농성현장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위한 보다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그의 꿈이 됐다.

일명‘사파기금’이라 불리는 연대기금은 2011년 파업기금과 노동자가족의 생계비를 지원하자는 취지로 권영숙 박사가 제안하여 시민들의 호응을 얻고 실제 여러 파업현장에 지원된 바 있다. 백 씨가 페이스북 친구들과 벌인 ‘만원의 만찬’ 캠페인 역시 이런 시민운동의 영향 속에서 만들어진 자발적 기금모금으로 볼 수 있다.

“파업이 길어지면 수익사업을 같이 하는 사업장들이 생긴다. 공동구매를 하는 것도 방법이고 다양한 기금마련 사업으로 농성의 이유를 알리고 공감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그는 “특히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시민참여로 조성된 ‘지역연대기금’의 지원은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단식이 이어지고 있는 요즘, 사회적 약자의 자리에서 공감하고 실천하는 한 시민활동가의 남다른 꿈이 돋보이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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