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재표   그림: 옆꾸리

재상 충원공이 온천에서 목욕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굴정역(屈井驛) 동지야(桐旨野)에 이르러 머물게 되었다. 문득 어떤 사람이 매를 놓아 꿩을 쫓는 것을 보았는데, 꿩은 금악(金岳)을 지나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방울소리를 듣고 찾아가니 굴정현 관청 북쪽의 우물가에 이르렀다. 매는 나무 위에 앉아있고 꿩은 우물 속에 있는데, 물이 핏빛을 띠고 있는 것 같았다. 꿩은 양쪽 날개를 펴서 새끼 두 마리를 품고 있었고, 매 역시 그것을 어여삐 여겨서인지 함부로 덮치지 않고 있었다.
<삼국유사 탑상 제4 영취사 중에서>


세월호 유족들이 ‘유족이 벼슬이냐’며 되레 모욕을 당하는데, 광화문 농성장에는 동지(同志)들의 동조단식이 이어졌다. 뒤가 구린 이들은 여론의 매를 놓아 꿩을 쫓았는데, 꿩은 그 악(惡)에 쫓겨 세상에서 잊혀갔다. 그들의 통곡소리를 듣고 찾아가니 진도 팽목항 맹골수도 앞바다에 이르렀다. 매는 하늘을 맴돌고 꿩은 침몰한 배 위에 있는데, 물이 핏빛을 띠고 있는 것 같았다. 꿩은 양쪽 날개를 펴서 물속의 아이들을 품고 있는데, 매는 꿩의 허점을 찾아 호시탐탐 덮칠 때만을 노리고 있었다.

그때 알아봤다. 적폐(積弊)와 개조(改造)라는 두 단어만 도드라졌던 대통령의 세월호 대국민 사과에서 예견된 상황이었다. 그래 여객선이 침몰한 것은 교통사고라고 치자. 그런데 배 안에 ‘가만히 있는’ 아이들을 한 명도 구하지 못한 건 어떡하란 말인가? 국민 일부가 일부러 구하지 않은 거라고 믿고 있는 국민 분열은 어떻게 추스를 것인가? 대통령은 자갈치 시장으로, 여당 대표는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거기 가서 고등어 사고, 문어 들고 인증샷 찍으며 민생투어할 때가 아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