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근하고 따뜻한 얘기들이 숨어있는 ‘작은책’

유영경
충북여성발전센터 소장

가방 안에 습관처럼 넣고 다니는 책이 있다. 달마다 나오는 ‘작은책’이다. 책이름처럼 크기가 내 손바닥만큼 작은 책이다. 점점 노안(老眼)이 되면서 두꺼운 책은 오랜 시간 읽어야 하는 부담이 늘어가는데, 작은책은 그렇지 않다.

편하게 틈내서 맘대로 읽을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책 내용이 가식이나 허구로 쓰여진 것이 아닌 삶을 성찰하면서 느낀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가 중심이라서 좋다. 그러니 재미 있을 수 밖에 없다.

또 가끔은 마치 내 이야기인 듯 싶어 잠깐씩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이번 호 기획특집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것들‘아파트’가 주제이다. 어느 아파트에서 사는냐에 따라 계급이 정해지는 이상한 우리나라 아파트 문화를 솔직하게 비판하는데 나 자신을 비판하는 말이라서 아프기도 하다.

세상사는 이야기를 정직하게 말 하듯 글로 쓴다. 글을 쓰는 이들 대부분이 나처럼 일상을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살아가는 게 바로 일하는 것인데, 작은책은 바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작은책은 8월까지 230호를 발간하였다. 한 달에 한 번씩 나오는 책이니까 약 2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것으로 짐작된다. 처음 작은책을 알게 된 것은 1993년 어느 날 윤구병 선생님(보리출판사 대표)께서 노동자들이 쓰고 읽는 책을 만들겠다고 하시면서 ‘작은책’ 1호를 주셨다.

그 즈음 출간되는 대부분의 월간지가 칼라와 화보중심으로 꾸려졌다면, 당시 작은책은 정말 손바닥 크기만한 누런 표지에 흰색은 종이요, 검은 색은 글씨로, 흑백으로만 만들어진 매우 소박한 책이었다.

20년의 역사 간직한 ‘작은책’

▲ 제목: 작은책 지은이: 편집부 출판사: 작은책
그런데 윤구병 선생님은 이렇게 소박한 작은책에 큰 소망을 담고 계셨다. 이오덕 선생님의 ‘글이란 말하는 것처럼 그대로 정직하게 쓰는 것이다. 그래서 글짓기가 아니라 글쓰기’라는 ‘글쓰기 철학’과 같은 생각으로 노동자들이 노동자의 생각을 그대로 글로 표현하고 삶을 가꿀 수 있어야한다는 신념으로 태어난 책이다. 그리고 보리출판사에서 1995년 5월부터 정식으로 출간되었다.

작은책이 처음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쓰게 한다는 취지는 좋았으나, 월간지로서 사람들의 흥미가 좀 시들어갈 무렵, 책답게 하고자 표지가 바뀌었다. 흑백대신 세밀화 작가들이 노동자들의 일상을 그리고, 그림에 짧은 글을 달았다.

이번 8월호 글과 그림은 백남호씨가 안전모를 쓴 노동자를 그리고, 그림 아래 ‘땡볕에서 일하다가도 점심 먹고 잠시 쉬는 시간이 있어. 그때 그 꿀잠이 우리에겐 여름 휴가야!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라고 써 놓았다. 8월이면 대개는 여름휴가 장소로 갈만한 곳이나 맛집등을 소개하는 일반 월간지하고는 참으로 많이 다르다.

그렇지만 이 그림과 글을 보면서 마냥 무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림 덕분에 이전에 괜히 중압감처럼 무겁기만 하던 책이 경쾌함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책이라는 것이 좋은 글만 써 있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림과 글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 때 완성되는 것도 알게 된 계기였다.

전직 버스기사 안건모 씨가 발행·편집인

작은책에는 노동조합 관련한 이야기 말고도 여성으로 살아가기, 생태·환경이야기,역사, 영화 등 삶의 구석구석을 내보인다. 그래서 친근하다. 작은책 발행인, 여기서는 엮은이로 표현하는데, 버스기사였던 안건모 선생님이 발행·편집인을 맡고 있다. 안건모 편집인은 버스기사였는데 글쓰기 공부를 하면서 책을 내고, 지금은 다른 사람들에게 글쓰기 공부를 지도하신단다.

‘글도 권력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글이라는 것이 그동안 학력이 높은 지식인의 전유물처럼 되어버린 현실에서 이 같은 시도와 도전은 우리 사회에 새로운 희망을 준다. 작은책은 특히 정신 노동자와 육체 노동자라는 이분법적 사고와 넓고 깊은 편견을 뛰어 넘어 지식인의 전유물 같았던 글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생각과 말을 글로 표현하는 평등한 공간이 되었다.

‘일하는 사람들이 이 사회의 주인이라는 이야기는 늘 해왔지만 정작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온전히 담는 잡지가 없어서 안타웠습니다. 그래서 오로지 일의 소리만을 전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월간 작은책을 펴내기 시작했습니다’라는 작은책의 취지가 더 많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읽고 쓰게 되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