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수 보은군 문화관광해설사

▲ 박진수 보은군 문화관광해설사
선정훈 선생은 보은군 장안면 개안리에 위치한 중요민속문화재 134호 지정된 선병국 가옥을 건축한 인물이다.

사실 99칸 한옥 대저택으로 유명한 선병국 가옥은 잘 알고 있지만 이 선병국 가옥을 건축한 선병국의 부친 선정훈과 선정훈의 부친 선영홍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필자는 최근 선정훈 이라는 인물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면서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다. 그 감동은 18년 전, 보은군 회인면 중앙리 출신으로 1930년대 한국 문단의 왕이라는 칭호를 받았던 오장환 시인에 대한 원고와 관련자료를 수집할 때의 감회에 견줄 만한 것이었다.

무명시인, 월북작가 등 오장환 시인을 처음 거론할 때 보은과는 멀게만 느껴졌던 그 느낌처럼, 선정훈 역시 99칸 선병국 가옥의 주인이며 구한말 10대 부자 중 한 분이었다는 단편적인 정보로 과연 그가 보은군의 대표적인 문화역사 인물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한마디로 말해서 앞서가는 선구자, 미래를 예측한 큰 인물이었음을 곧 알게 되었다. 약관의 나이에 부친 선영홍과 함께 보은으로 이주해 터를 잡고 3만여 평의 삼가천 강변에 수천그루의 소나무를 심고 집 뒤편에는 울창한 숲을 조성해 지금의 선병국 가옥을 지었다. 4000여 평의 면적에 안채, 사랑채, 사당채 등을 짓고 대문 밖 넓은 바깥마당에 관선정을 지었다.

선병국 가옥은 당대 최고의 한옥 대저택이었다. 선병국 가옥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은군의 대표적인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는데, 이 선병국 가옥의 뒤에 가려져 있는 보물이 있었으니 바로 관선정이었다.

지금 장안면 개안리에 장안부대가 들어오면서 흔적조차 사라져 버린 관선정은 일제강점기 일제의 탄압으로 보은향교의 한학에 대한 교육이 끊어지자 교육의 끈을 놓지 않고 명맥을 이었던 최고의 한학교육기관이었다.

당시 관선정은 한말의병장 송사 기우만, 겸산 홍치유 등 전국 각지 최고의 한학자를 모셔 서당을 운영했으며 수백 명의 학생 중 청명 임창순을 배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관선정의 교육은 한학을 중심으로 민족의식을 함양한 곳이었음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다행히 관선정을 기억하는 학우회가 세운 선정훈 기적비와 관선정 조감도를 통해 이러한 내용이 전해지고 있지만 100년 전 선정훈 선생이 관선정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그 깊은 뜻은 되새기지 못하고 있다.

선병국 가옥 뿐만아니라 관선정 등 대역사를 진행한 선정훈을 주목하고 그가 보은 땅에 남기고자 했던 희망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