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탁월한 소설 <1984>

김주란
청주서원도서관 사서

이번 여름 휴가기간 읽을 책으로 고른 것은 조지오웰의 <1984>이다. 학창시절 도전정신으로 읽다가 건조한 문장과 삭막한 분위기에 대충 읽고 밀쳐두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석학들이 요즘 현대사회의 비판에 자주 인용하는 것을 보고 다시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전은 읽고 나면 오랜 동안 생각을 남기고, 늘 새롭게 해석된다는 것이 짧은 기간 수없이 사라져가는 여타 잡문과 다른 점이다.

이번에 <1984>를 다시 읽으면서 나 역시 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었고, 휴가가 끝난 지금도 이런 저런 생각의 꼬투리가 되고 있다. <1984>를 처음 읽었을 때는 컴퓨터도 제대로 없었던 그 시대에 지금의 디지털화와 그로 인한 개인의 일상이 감시된다는 것을 통찰했던 작가의 혜안에 놀랐지만, 너무나 절망적인 결말에 별다른 감동이 없었다. 두 번째 읽었을 때는 같은 결말이지만 작가의 역설적인 희망의 메시지를 새롭게 찾게 되었다.

조지 오웰은 왜 이런 소설을 썼을까?

▲ 제목: 1984 지은이: 조지 오웰 옮긴이: 김은빈 출판사: 지경사
오웰이 살았던 시대는 미증유의 가장 혼란스럽고 처참했던 혁명의 시대이자 격동의 시대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비롯하여 서구 제국주의의 절정에 달한 식민지수탈,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등장으로 독일과 이태리의 무장화,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대숙청, 그리고 자신이 직접 참전했던 스페인 내전등 대격변의 역사현장을 관통하며 오웰은 전 생애를 보냈다.

오웰이 이 작품을 완성하기 전에 쓴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 를 보면 그의 작품활동의 목적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글을 쓰는 동기는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 등 네 가지가 있는데, 평화 시대였다면 나는 화려한 책 혹은 단순한 묘사 위주의 책을 썼을 것이 틀림없고 나의 정치적 충성이 어느 쪽에 있는 건지도 모르는 상태로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조지 오웰은 30년데 서구의 정치상황이 악화일로에 있는 상황에서 문학은 분명 달라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은 정치의 시대다. 당신이 침몰하는 배위에 있을 때 당신의 생각은 그 침몰하는 배에 집중될 것이다”라는 절묘한 비유로 자신의 글쓰기가 정치적일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 20세기의 격동의 정치상황이 자기 자신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작가 조지 오웰은 이처럼 당대의 현실문제와는 무관했던 당시 모더니즘 영국문단의 돌연변이였고, 작가들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닌 실천적 지식인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웰은 애초에 이 책의 제목을 <유럽의 마지막 남자>로 하기를 원했으나 출판사와의 협의과정에서 1948년을 뒤집은 <1984>로 변경되었다. 2014년인 지금 <1984>는 지나간 과거이지만 암울한 미래를 그린 미래소설, SF소설로 읽는 것에 문제가 없을 것이다.

오웰은 주인공 윈스턴을 유럽의 마지막 인간으로 그리고 있다. 윈스턴은 감시의 포위망 속에서도 몰래 일기를 쓴다. 또, 당이 강요하는 2+2=5라 믿는 대신 2+2=4라고 말하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한다. 그는 기록물에서 사실을 왜곡하는 일을 하면서도 잃어버린 과거를 그리워하며,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세상을 그리워한다. 윈

스턴은 당원이 아닌 인간이하로 취급받는 사회하층계급에게 이 사회를 바꿀 유일한 희망이 있다고 깨닫는다. 그들은 인간적인 감정을 드러내며 살고 있으며 과거를 기억하는 역사인식이 있고, 잠재성이 있기 때문이다.

희망은 있는가

“그들은 당이나 국가나 이념 따위에 충성을 바치지않고 그들 자신에게 충실했다. 그는 비로소 노동자들을 경멸하지 않게 되었다. 경멸하기는커녕 그들이야말로 오느 날인가 생명을 되찾아서 재건할 수 있는 잠재된 힘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노동자들이야말로 인간이다. 그들의 내면은 경직되어있지 않다. 그들은 윈스턴이 의식적인 노력으로 다시 배워야할 원시적인 감정을 그대로 지닌 채 살고 있다.”

작가는 외부당원인 주인공 윈스턴을 신체적 결함을 가진 음울하며 나약한 인간으로 그리고 있다. 또 끝내 당에 항복하여 2+2=5를 다시 익히며 빅브라더를 사랑하게 된 상태로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적인 결말로 마무리하고 만다. 윈스턴의 죽음으로 작가는 마지막 희망까지 사라져 버렸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하지만, 그건 진지하지 못한 독자의 쉬운 감상이다.

작가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나약한 외부당원 주인공 윈스턴을 죽게함으로써 희망은 사회하층계급에 존재함을 부각시키고 있다. 또 주인공을 죽게함으로써 전체주의 사회에는 희망이 없음을 더욱 더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인간다운 인간성을 지니는 것, 그것이 희망임을 오웰은 모든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다.

에리히 프롬이 언급했던 것처럼 오웰은 단순히 암울한 미래상을 예언하려 했던 것이 아니다. 그의 에세이를 통해서도 미루어볼 수 있듯이 오웰의 <1984>는 명백히 정치적이다. 그는 거대한 지배 체제 하에서 저항을 기도하지만 결국 체제의 벽을 넘지 못하고 파멸해 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통해 세계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자신의 사상을 탁월하게 형상화하면서 독자들의 비판적 의식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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