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재표 그림: 옆꾸리


처음에 제상이 떠나갈 때, 부인이 소식을 듣고 뒤쫓았으나 미치지 못하자 망덕사 문 남쪽의 모래밭에 드러누워 오래도록 울부짖었는데, 이 때문에 그 모래밭을 장사(長沙)라 불렀다. 친척 두 사람이 부축하여 돌아오려는데 부인이 다리가 풀려 일어나지 못했으므로 그 땅을 벌지지(伐知旨)라 하였다.

오랜 뒤에 부인은 남편을 사모함을 이기지 못해 딸을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 왜국을 바라보며 통곡하다 삶을 마치고 치술령의 신모가 되었다. 지금도 사당이 남아있다.
<삼국유사 기이 제1 내물왕과 김제상>

유민이 탄 배가 침몰하자, 아빠 김영오씨가 소식을 듣고 뒤쫓았으나 미치지 못하자 팽목항 방파제에 드러누워 오래도록 울부짖었는데, 이 때문에 그 방파제를 장제(長堤)라 불렀다.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라며 37일(19일 현재)을 굶었음에도 꼿꼿이 일어서 싸우므로 그 땅을 불지지(不止志)라 하였다. 아빠가 딸을 사모함을 이기지 못해 유족들과 함께 광화문에 남아청와대를 바라보며 통곡하나 대통령은 면담요청에 묵묵부답이다. 아빠는 지금도 사선에 있다.

왕의 아우를 구하기 위해 왜왕에게 거짓 투항했던 제상은 왕제를 구한 뒤 “차라리 개, 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는 되지 않겠다”고 버텼다가 발바닥의 살갗이 벗겨진 채 날 세운 갈대 와 뜨거운 철판 위를 걷는다. 그는 화형으로 삶을 마감했다.

6.4지방선거 전,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했던 여당 정치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눈물을 흘렸던 대통령은 묵묵부답이다. 의사출신이라는 국회의원은 “제대로 단식했다면 벌써 쓰러졌어야한다”고 까지 말했다. 모질다. 인간의 영혼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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