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운호고등학교 교사

▲ 김기현 교사
몇 해 전부터 한국 사회에 인문학이 대세다. 어쩌면 이제 인문학 없이는 조직을 견인하거나 성장 발전시킬 수 없을 정도다. 대학이 포기한 인문학을 사회 구성이 끌어안고 간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시대가 인문학에 다시금 눈을 돌리는 것은 시대적 상황이 인문학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학문도 시대의 정서에 따라 수용의 깊이와 지속성이 달라진다.

국민의 지적요구가 지식의 성장 기반에 어떻게 두터운 뿌리를 내리느냐에 따라 인문학은 역사학과 더불어 고고학으로 성장 발전을 하게 된다. 한 국가, 한 사회가 물질생산을 위해 끝없이 인간성을 후위로 두고 왔다면 작금의 시대는 인간 내면의 본질을 찾으려는 시도로 연령과 관계없이 끝없이 요구될 것이다.

변화의 중심에는 항상 존재하는 것이 자아일 것이다. 타자와 구분되는 자아의 실체를 찾으려는 의지를 동양학에이 잘 안내를 하고 있다. 논어는 인(仁)라고 한다. 인은 경제용어로 펜더멘탈로 내재적 가치를 말한다. 이 인에 대한 해석이 논어 안에서도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인(仁)은 곧 인(人)이요, 인으로 인해 인이 형성되며 이 인은 인을 자아로 인격을 결정하여 주기도 한다.

공자의 논어가 인학(仁學)이면서 인학(人學)이 되는 이유인 것이다. 또 인학(人學)은 인간학(人間學)과 같은 말로 본다. 문(文)은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경험이고 능력이다. 인간의 형성 과정에 내면을 표현하는 학문이 인학이면 그에 문을 더하면 비로소 인문학의 완성된 학문으로 구성된다. 인학을 통해 내실을 기해야, 인문학을 통해 외연이 형성되는 것이며 무릇 타자로 부터 존재가 부각되는 것이다.

청소년기의 성장통은 질병이 아닌 성장과정으로 육체적 변화의 통증보다는 정신적 지체에서 오는 성장의 고통이 더욱 견디기 힘든 시기이다. 시실 청소년기는 자신에 대한 예의를 만드는 시기일 것이다. 불완전하고 성숙의 단계인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지기의 존재를 위협하는 현실의 공포와 마주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삶에 대해 갖출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현실의 공포는 부모의 기대에 이르지 못해 분리될 수 있다는 공포, 또래 집단에서 자신을 인정받지 못하는 소외로 부터의 공포일 것이다.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부족하고 결핍되고 미치지 못하는 것까지 모두 다 받아들인 후에도 여전히 자신에 대한 온전한 신뢰를 굳건하게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인문학을 통해 성장과정을 가지고 가야 성장통의 고통을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기 스스로 인정한 한 부분에 도달하게 되면 이상 타인에게 날 입증하기 위해 시간과 수고 그리고 힘을 낭비하지 않게 된다. 누구의 승인도 기다리지 않고 그저 자신이 하고 싶고, 재미있어하는 것에만 집중하게 된다.

다른 사람 역시 어떤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아를 형성해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청소년에게 인문학은 어떠한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인문학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그 안에 있는 것으로 접근하여 그들이 생각하는 하위문화에서 피해야 할 것이다. 이제 인문학은 기술을 만나고, 현실과 상상이 연결되고, 예술과 기술이 결합되는 시대에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틀을 요구하는 시대가 되었다.

시도되지 않았던 것, 만들어진 적 없는 새로운 것들을 만들기 위해서는 끈끈한 상상력이 필요하고 새로운 발상, 새로운 접근, 새로운 창조, 진화의 변화를 통해서 가능하다.

이러한 상상력과 창의력, 창조력을 갖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탄탄한 지식과 교양이 바탕이 된 인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할 때 창의력이 발휘될 수 있고, 이것을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틀로 만들었을 때 비로소 청소년들은 변하게 되고 그 안에서 정체성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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