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북예술고 교사

▲ 정진명 시인
나침반, 활자, 종이, 화약 이 4가지는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발명품이라고 대단한 자부심을 지니는 분야이다. 그런데 세계 지도에서 찾기도 힘든 극동 아시아의 조그만 나라에서 중국보다 더 먼저 더 좋게 만든 것들이 발견된다. 세계 최초의 나무 활자는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고, 쇠 활자는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한 <백운화상 초록 직지심체요절>이다.

그런데 얼마 전 또 한 군데서 이러한 문제가 생겼다. 바로 침술 분야이다. 중국의 4대 의서 중 하나인 황제내경의 ‘영추’가 고려의 침경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원우8년 봄 정월 경자일에 고려에서 바친 황제침경을 천하에 반포하라는 조서를 내렸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송나라는 춘추전국시대에 못지않은 혼란한 시기인 5호 16국을 통일하면서 들어선 왕조이다.

그래서 전란으로 불타 없어진 자료를 찾으려 주변의 여러 나라에 사신을 보낸다. 물론 그 사신은 고려에도 왔고, 고려에서는 모든 자료를 실어 보냈다. 중국의 천태종은 고려에서 보낸 천태종 자료를 바탕으로 부흥한 것이다. 이런 건 국사 시간에 배운 내용이다.

황제침경도 바로 이때 고려에서 진상된 책이다. 그러면 황제침경이란 어떤 책인가? 지금 동양의학에서 가장 중시하는 황제내경 ‘영추’가 그것이다. 그러니까 고려에서 진상된 침경이 황제침경이 되었다가 황제내경이 된 것이다.

그런데 송나라 때의 황제내경 영추의 서문을 보면 처음부터 황제침경이 고려로부터 진상된 사실을 감추었다. 서문을 쓴 사람은 사숭인데, 자기네 집에 대대로 내려오던 책이라고 해서 고려침경이라는 사실을 숨겼고, 이 말대로 후대 사람들은 그런 줄 알고 무려 1000년을 지내온 것이다.

황제내경을 뿌리로 하여 지난 2000년 동안 발전해온 동양의학은 이제 또 다른 위기에 직면했다. 바로 서양의학이다. 서양의학이 동양의학을 앞선 것은 불과 200년이 채 안 된다.

해부학을 바탕으로 발전한 의학이 생체의 증상학을 바탕으로 발전한 의학을 완전히 미신으로 몰아붙이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비난에 적절한 대응 논리를 못 찾은 동양의학자들도 서양의학의 개념에 맞춰서 어설픈 해명을 해주기에 급급하다.

그러나 비난에 가까운 이런 식의 태도가 과연 인류를 질병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취할 태도인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서양의학도 분명히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한 단계 넘어설 패러다임이 동양의학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 여기서 말하는 동양의학의 이론은 황제내경 2권과 난경이고, 이 셋 중의 하나는 고려침경이라는 것이 이 글의 요점이다.

나는 내가 동양의학 중에서도 고려의 침술을 공부한다는 것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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