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제 한얼경제사업연구원장

▲ 전병제 한얼경제사업연구원장
지난 3월 KAIST 미래전략대학원에서 벤처 생태계 복원의 주창자이자 정부 3.0의 이론가 중 한 명인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의 강연이 있었다. 강연의 주제는 정부 3.0의 추진여건과 추진전략이었지만 강의록을 보면 주제와는 별개로 정부의 역할내지 공무원의 속성과 관련해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표현 한 대목이 눈에 띈다.

“정부의 문화는 불패문화이다. 잘못 되지 않는 것, 지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기업의 문화는 다르다. 기업은 필승문화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 공무원 입장에서 아마도 이런 주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 “민간은 어떤 경우에도 이겨야(성공해야) 하는 싸움을 하려는 자이다. 반면 공무원은 어떤 경우에도 져서는(실패해서는) 안 되는 싸움을 해야 하는 자이다.”

사회기반시설(SOC)에 대한 민간투자방식을 논의할 때 흔히 거론되는 제3섹터는 관(官)인 제1섹터와 민(民)인 제2섹터의 합작영역을 의미한다. 그만큼 관은 권력면에서나 재력면에서 개별 민간이 능가할 수 없는 글자 그대로 한 국가의 확고한 제1섹터이다. 공무원은 그 제1섹터의 구성원이자 행동주체이며 많은 경우 제2섹터에 대한 규정자(規定者)다. ‘민(民)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관이 물을 먹이기로 작정한다면 공복(公僕)이라는 말이 아직은 허울좋은 레토릭(rhetoric 修辭)임을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당연한 결과로 공무원의 이미지나 그에 대한 평가는 긍정보다는 부정 측면이 강하다. 변명해 주려는 것은 아니지만 제1섹터에 대한 제2섹터의 비판이 정당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공무원의 기능과 속성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민?관간 갈등은 많은 경우 민은 모험을 요구하는 반면 관은 안정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예컨대 LED 가로등은 기존 수은등이나 나트륨등보다 전력은 70%∼ 50%를 절감하고 수명은 5배 이상 길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분류되어 중소 민간사업자는 기술과 자본을 가진 대기업과 소정계약을 맺고 절감분 전기료를 수익원천으로 지자체에 전액 무료교체를 제안한다. 거부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결론은 놀랍게도 어떤 대기업 환경파트의 경우 5천억원의 관련 사업비를 쌓아 놓고도 1년이 다 가도록 그 대부분을 소진시키지 못했다. 관심을 보이는 지자체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민은 담당공무원이 소신없고 책임회피에만 급급한 무사안일의 철밥통이라고 비난한다. 당신 주머니에서 전기요금이 나간다면 그러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반면 관은 전례가 없어 LED 가로등의 안정성을 아직 신뢰하기 어려운데다 사업자가 영세해 장기간의 유지보수 서비스가 불확실하고, 자칫 특혜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고 일축한다.

경제학적으로 말한다면 새로운 시도가 안고 있는 실패시의 지불비용이 기존 틀의 유지(維持)를 위한 지불비용보다 클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 시도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어떤 기회요인과 편익도 공무원을 움직이는 당근이 되기는 어렵다.

담당 공무원이 불성실·무책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선(善)의 의지가 충만함에도 불구하고 결코 져서는 안 되는 싸움을 해야하는 속성과 숙명을 가진 존재가 또한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무원의 선택이 이것뿐이라면 국가와 지역의 기반인 제1섹터는 미래가 없고 이는 곧 국가·지역의 미래가 없다는 의미로 읽힌다는 사실이다.

현대의 국가간 역학관계는 유지만으로는 결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는 격류를 거슬러 오르는 배의 경쟁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무원이 지지 않아야 하는 싸움에 본분을 다하면서도, 때로는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이기는 싸움을 시도하도록 만드는 제도적 장치는 무엇일까?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상명하복이라는 절대생리를 가진 공무원 사회에서 그 첫 번째 단추를 꿰야하는 책임은 바로 위 상급자, 나아가 기초·광역 단체장과 궁극적으로는 대통령에게 있다고 믿는다. 창조적 시도에 대한 보상과 이유있는 실패에 대한 면책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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