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재표 그림: 옆꾸리

어느 날 왕이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구간들은 모두 여러 벼슬아치의 우두머리인데, 그 지위와 이름이 모두 소인이나 농부(農夫)의 호칭이지 결코 고관 직위의 호칭이라고는 할 수 없소. 혹시라도 나라 밖 사람들이 듣게 된다면 반드시 웃음거리가 될 것이오.”

마침내 아도(我刀)를 아궁(我躬)으로 고치고 여도(汝刀)를 여해(汝諧)로, 피도(彼刀)를 피장(彼藏)으로, 오도(五刀)를 오상(五常)으로 고쳤으며, 유수(留水)와 유천(留天)이란 명칭은 윗글자는 고치지 않고 아랫글자만 고쳐 유공(留功)과 유덕(留德)으로 하였다.
<삼국유사 기이 제2 가락국기 중에서>


어느 날 왕이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모두 여러 벼슬아치의 우두머리가 될 자들인데, 삶의 궤적이 소인이나 농부(弄夫)의 것이지 결코 고관 직위의 인생이라 할 수 없소. 내가 천거했지만 나라 안팎 사람들의 입질에 오르내리며 웃음거리가 되고 있소.”

마침내 창극(昌劇)대신 홍원(訌怨)을 재활용하고 명수(冥首)를 우여(憂如)로, 윤선(輪旋)을 희정(戱正)으로, 채필(砦疋)을 기권(棄權)으로 교체하고, 정복(正覆)을 종섭(終涉)으로 바꿨으나, 믿고 싶었던 성근(性根)은 사생활 폭로가 두려워 자진 사퇴했다.

고대왕국 가야는 관직의 이름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국격이 충분히 격상됐다. 그러나 사람을 물갈이 하려고 해도 쉽지 않은 나라가 있다. 국가를 개조한다면서 내각을 개조하는 것조차 여의치 않은, 그 나라의 백성들이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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