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이나양
청주 흥덕문화의 집 사무국장

며칠전, 지인과의 술자리에서 손금이 술안주가 된 적이 있다. “오래 살아?” “음~~~ 고비가 좀 있었던거 같고…10대부터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네. 건강이 좋지 않고…” 이쯤에서 나는 어, 맞네 하면서 바짝 앞으로 다가가 다시 물었다. “그럼 앞으로의 건강은 어때?” 손금을 봐주던 지인은 흘끗 쳐다보며 “건강에 고비가 오는데…”라고 말했다. 또? 하고 되물으며 좀 심각한 표정으로 언제냐고 하며 바짝 다가 앉으며 되물었다.

손금을 봐주던 지인은 흘끔 돌아보더니 “아니, 60대에 좀… 안 좋아”라며 “웃자고 봐 주는데 왜 죽자고 덤벼?” 한다 그러고는 슬쩍 또 다른 사람들 손금을 봐 주며 “음 오래 살아. 건강하게, 근데 재물복은 없네” 하거나 “난 생명줄이 짧아. 일찍 죽을 거야 하하하! 다 이놈의 술 때문이지. 하하하!”라며 주거니 받거니 크게 웃고 떠들었다. ‘죽음’이라는 말은 그냥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겐 그저 한줄기 바람처럼 스쳐 지나갈 뿐이다.

▲ 제목: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지은이: 미치 앨봄 옮긴이: 공경희 출판사: 살림
우연히 책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죽음을 앞둔 노교수와 그의 제자가 나눈 대화를 담았다. 저자인 미치 앨봄은 모리 슈워츠 교수의 제자이다. 모리는 루게릭병에 걸리기 전까지 브랜다이스 대학에서 35년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어린시절, 한 모피공장에서 착취 현장을 목격한 후 다른 사람의 노동을 착취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기로 맹세하면서 학자의 길을 택했다. 시카고 대학에서 사회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고 1959년 브랜다이스 대학에서 사회학 교수로 재직했던 그는 병으로 인해 더 이상 강의를 할 수 없었던 1994년까지 학생들을 가르쳤다.

노교수는 시한부 생명이라는 선고를 받고 병원에서 나오던 그 날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이렇게 시름 시름 앓다가 사라져 버릴 것인가, 아니면 남은 시간을 최선을 다해 보낼 것인가‘ 그는 살아 있는 우리들에게 죽음을 배우라고 말하며 살아 있음의 의미를 들려준다. 마지막 순간까지 “어떻게 죽어야 할지 알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게 된다”고 이야기 한다.

최대한 인간답게 살려고 애쓰고 있나?

‘살아 있는 이들을 위한 열네 번의 인생수업’이란 부제처럼 이 책은 모리가 세상을 떠나기 전 그의 제자 미치와 매주 화요일에 만나 나눈 수업이다. 주제는 인생의 의미. 모리교수는 미치에게 이렇게 물었다. 마음을 나눌 사랑을 찾았나? 지역사회를 위해 뭔가를 하고 있나? 마음은 평화로운가? 최대한 인간답게 살려고 애쓰고 있나?

글을 읽다보면 점점 작은 화분에 핀 분홍빛 히비스커스 꽃을 볼 수 있는 그 곳의 서재 창가에 있는 듯 이야기에 빠져들며 함께 참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곤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지만 깨닫지 못했던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타인을 이해하고 공동체를 사랑하는 마음도 새삼 커진다. 용서라는것, 나이든다는 것 모든 것이 소중하다.

언제 부터일까? 나는 문득 문득 ‘죽음’이라는 단어를 눈앞에 떠올리며 순간 까마득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그러다가 곧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상 속으로 돌아가 버리곤 한다. 이제 나는 깨닫게 되었다.

내 머릿속에 왜 ‘죽음’이라는 단어가 맴돌았을까? 왜 일까? 그건 모리교수가 우리에게 보낸 메시지 ‘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알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 수 있다’, 바로 그 속에 답이 있었다. 죽음과 연결된 삶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것이 나의 고민이었던 것이다.

이 책은 여러 가지로 나에게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을 준 글이다. 누군가와 간절히 이야기 나누고 싶을 때 다가왔다.

글을 읽으며 모리교수처럼 ‘진정으로 그리워할 만한 스승이 있는가’하고 반문해 보지만 고개를 내젓는다. 그렇지만 괜찮다. 이 글은 읽는 모든이들에게 등을 두드려 줄 것이다. 힘내라고, 인생의 의미를 찾아 힘차게 나아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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