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에어>는 간단히 말하면 제인의 ‘성공담’

윤정용 평론가

필자는 대학에서 영미문학을 전공하고, 현재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영화속 숨은 문학의 세계를 들여다보자.

19세기 영국의 어느 귀족의 이야기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다. 당시의 관습에 따르면, 그의 작위와 저택과 모든 재산은 큰 아들에게 상속된다. 그런데 둘째 아들이 가난하게 살면 자기 체면도 상하고 가문의 위상도 저하되기에, 그는 아들을 서인도 제도의 농장주인 자기 친구에게 보낸다.

그 친구에게는 크리올 출신의 부인과 딸이 있다. 그녀는 서인도 제도에 넓은 땅을 가진 농장주의 상속녀다. 귀족은 그녀의 집안에 ‘정신병력’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숨기고 정략결혼을 위해 아들을 서인도제도로 보낸다.

영국 귀족의 그릇된 문화 꼬집기

아버지의 걱정과는 달리 아들은 육감적인 크리올 출신의 아내에게 반해 곧장 결혼한다. 그러나 그는 곧 서인도 제도의 무더위, 아내의 기이한 행동과 포악한 성격, 성적 음탕함에 진저리를 친다. 더욱이 아내의 가문에 정신병력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는 결혼으로 아내의 재산을 가로채고 그녀를 영국으로 데려와 다락방에 감금한다. 게다가 그는 아버지와 형의 사망으로 저택과 작위와 모든 재산을 상속한다.

영국으로 돌아온 뒤 그는 음탕한 아내로부터 받은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여러 여자를 만나지만, 공허함과 환멸감만 가중되고, 성격은 점차 냉소적으로 변한다. 그런 와중에 세속적인 미녀들과는 전혀 다른 평범한 여인을 만나 우여곡절 끝에 ‘진실한 사랑’을 찾아 가정을 꾸리며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이 이야기는 크게 두 개의 볼륨으로 나눌 수 있다. 즉, 귀족의 아들이 정략결혼을 위해 서인도제도로 가서 아내의 재산을 가로채고 그녀를 영국으로 데려와 자신의 저택에 감금하는 내용이 볼륨 1이라면, 세상 사람들의 시선과 세속적인 조건을 초월해 진실한 사랑을 찾아 결국 행복한 삶을 산다는 내용이 볼륨 2이다.

아무래도 볼륨 1보다는 볼륨 2가 우리에게 더 익숙하다. 볼륨 2는 그 유명한 샬롯 브론테의 <제인에어>의 줄거리이고, 볼륨 1은 그 보다는 덜 유명한, 일반 독자들은 잘 모르는 린 리스의 <드넓은 사가소 바다>의 줄거리이기 때문이다.



볼륨1, 볼륨2로 나눠지는 구성

탈식민주의나 페미니즘과 같은 거창한 문학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볼륨 1은 볼륨 2의 일종의 ‘전사’라 할 수 있다.

즉, <제인에어>가 주로 제인과 로체스터의 낭만적인 로맨스에 초점을 맞춘다면, <드넓은 사가소 바다>는 로체스터가 제인을 만나기 이전의 상황과 그가 아내를 다락방에 감금한 이유에 초점을 맞춘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드넓은 사가소 바다>는 ‘다락방에 갇힌 미친 여자’의 ‘비참한 일대기’라 할 수 있다.

<제인에어>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은 제인과 로체스터의 결혼이 이루어지는 순간 다락방에 감금되었던 로체스터의 아내 ‘버싸’의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숨겨졌던 그녀의 존재가 드러나 제인과 로체스터의 결혼은 결국 무산된다. 제인은 충격으로 쏜필드 저택을 떠나고, 버싸는 저택에 불을 지르고, 로체스터는 버싸를 구하다가 육체적으로 불구가 된다.

라캉의 용어를 빌자면, 이 사건은 <드넓은 사가소 바다>와 <제인에어>라는 서로 다른 텍스트를 이어주는 ‘누빔점’이라 할 수 있다. 즉, 왜냐하면 이 사건은 <드넓은 사가소 바다>에서는 거의 마지막 장면에 해당하고(실제로 화재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고 버싸의 꿈속에서만 재현된다), <제인에어>에서는 시작장면은 아니지만 제인과 로체스터의 ‘불안했던’ 사랑이 끝나고, 그들의 진정한 사랑이 ‘확인되는’(confirmed) 과정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제인에어>에서 제인은 게이츠헤드, 로우드, 쏜필드, 무어 하우스, 펀딘을 거치면서 인간적으로 보다 성숙해지고, 경제적으로도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는 사랑까지 얻는다.

원했던 화목한 가정과 함께. 이제 제인은 고집 세고 못생기고 가난한 고아가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성숙되고 경제적으로도 풍족한 빅토리아 시대의 ‘신여성’으로 탈바꿈한다. 단순화하자면, <제인에어>는 제인의 ‘성공담’이라 할 수 있다.

빅토리아시대의 신여성 ‘제인’

<제인에어>는 1940년대의 영화부터 비교적 최근의 영화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영화화되었다. 그 가운데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 샤를로트 갱스부르와 윌리엄 허트 주연의 1996년 버전과 캐리 후쿠나가 감독, 미아 와시코브스카와 마이클 패스벤더 주연의 2011년 버전이 익숙하다.

두 편의 제작 사이에 시간적 차이가 있기 때문에 두 영화는 미세하게 차이를 보이지만, 두 편 모두 제인과 로체스터의 로맨스에 초점을 맞추고 버싸가 영화의 내러티브에서 소거되거나 ‘타자화’된다는 점에 있어서는 큰 차이는 없다.

이처럼 버싸는 원작 소설에서나 영화에서나 ‘다락방에 갇힌 미친 여자’로 호명되어, 제인의 순수함을 돋보이게 하거나, 로체스터의 비인간성과 냉혹성을 드러내는 표상으로만 기능할 뿐이다.

<제인에어>에서 제인과 로체스터의 사랑은 신분, 나이, 경제적 차이 등 세속적인 모든 조건을 초월한 숭고한 사랑으로 승화된다. 대신 버싸의 존재는 더욱 희미해져간다. 실제로 버싸는 정략결혼으로 재산도 빼앗기고, 이름도 빼앗기고, 강제로 이주당하고, 다락방에 갇힌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제인에어>에서 그녀는 제인과 로체스터의 사랑을 방해하는 타자로만 간주될 뿐이다.

<제인에어>는 세속적인 모든 조건을 초월한 지고지순한 로맨스로 읽힐 수 있지만, 결혼을 비즈니스의 일환으로 간주하는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귀족 사회의 세태 보고서로도 읽힐 수 있다. 즉, 조금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제인에어>는 당시 영국신사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정신병력을 지닌 며느리, 아내조차도 마다하지 않는 귀족사회의 냉혹한 단면을 보여준다.

고전은 감동을 받기 위해서, 자랑하기 위해서 읽는 게 아니라, 새로운 사유의 씨앗을 얻기 위해서 읽는 것임을 감안한다면, <제인에어>를 조금 다른 시각에서 읽어보면 어떨까 제안한다. 제인과 로체스터의 로맨스를 완전히 걷어내자는 게 아니라 버싸, 아니 앙뜨와네트의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지금까지 읽어왔던 <제인에어>와는 다른 <제인에어>로 읽을 수도 있다. 고전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고, 고전을 읽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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