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기 선배교사와 39기 후배제자들의 시 같은 만남
최원준 교사, 학생들과 시로 만든 ‘벽돌’ 쌓기 이어가

충북고등학교 학교도서관에 10여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혈기 왕성한 고교 남학생들의 눈빛이 모두 순하다. 교내 시창작모임인 벽문학회 회원들이다. 한 학기 동안 심혈을 기울여 탄생시킨 자작시들을 ‘벽문학’ 문집으로 묶었다. 문집에는 2학년 6명과 1학년 9명의 시 35편이 담겼다. 벽문학회를 거쳐간 동문들의 시도 함께 실었다. 문집은 통권 61호로 벽문학회 창립 이후 매년 1-2회 꾸준히 발간됐다. 충북고 벽문학회 활동은 최원준(36) 교사가 이끌고 있다.

▲ 최원준 교사(맨 오른쪽)와 ‘벽문학회’ 재학생 회원들. / 육성준 기자 eyeman@cbinews.co.kr

“벽문학회가 재건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우리 벽은 신입생 유치에 성공하면서 감격스러운 합평회를 개최하였습니다.” 벽문학회 인터넷카페에 올라와 있는 공지 문구다. 최원준 교사는 충북고등학교의 벽문학회 19기 동문이기도 하다. 1학년 신입회원이 39기이니 문학회 전체 기수 중 딱 중간이다.

최 교사는 “벽문학회에 대한 애정이 많다. 고교시절 문학회 활동이 이후 삶에 큰 자산이 됐다”면서 “요즘 아이들에게 시를 읽고 쓰자는 것이 욕심일 수도 있지만, 시를 통해 얻는 교육적 효과도 분명히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환경이 예전과 많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에게 시가 주는 긍정적 영향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시를 읽고 쓰는 학생들

1학년 신입회원 11명은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한 편 이상의 시를 썼다. 대부분 시를 읽은 경험도 많지 않은 아이들이다. ‘…사람들이 나를 잡으려한다 / 나는 그것들을 피하면서 살아 남아야한다 / 그것이 나의 운명이니까 / 그것이 나방의 삶이니까…’ <나방>이라는 제목의 시를 문집에 실은 신수용 학생은 “합평시간에 친구들이 한마디씩 해주는 말이 도움이 된다. 주변이야기와 나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면서 5기 선배이기도 한 박순원 시인의 시를 좋아한다고 전했다.



현재 벽문학회 재학생 대표를 맡고 있는 2학년 정재훈 학생은 문학지망생이다. 최근 우석대학교 중고생 대상 백일장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다. 정 군은 “시 쓰는 법은 아직 잘 모르고 느낌에 집중하고 있다. 시를 읽는 것과 쓰는 것에 큰 차이가 있다. 사소한 것도 잘 살펴보고 쓰려고 한다. 친구의 시를 읽다보면 그 친구를 더 잘 알게 된다”며 지금은 학업에도 매진을 해야 하는 만큼 시를 읽고 쓸 수 있는 시간을 내기 어려워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 교사도 고교시절 가졌던 문학도의 꿈을 다시 꺼내 들었다. 아이들의 시를 보며 틀에 박힌 해설과 표준 교수법에 익숙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벽문학회가 다시 한 번 그의 가슴을 뛰게 했다. 지금은 학생들보다 정열적으로 시를 쓰고 소설에도 도전하고 있다. 문학회 안에서 아이들이 형이라고 부를까봐 “학교 안에서는 제자, 밖에서는 후배, 줄여서 제배”라고 선을 긋고 있다며 밝게 웃었다.

‘벽인’ 또는 ‘벽돌’, 쌓거나 부숴야 할 존재

벽문학회는 지난 6월 선후배 회원들이 모여 정기총회를 열었다. 최근 몇 년 간 문학회 신입회원도 줄고 선후배간의 만남도 뜸해지면서 회가 정체되는 위기를 맞았다. 1학년 신입회원들에게 정성을 쏟으며 선후배간의 만남의 자리를 만드는 등 모교의 문학회를 살려 보자는 최 교사의 노력이 선배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다들 가슴 한 켠에 고등학교 시절, 그 중에서도 벽이라는 조그만 난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때의 열병처럼 온몸을 휩싸고 간 듯 하면서도 은근히 남아 우리들의 감성을 매만져 주던 벽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최 교사가 선배들에게 보낸 초대글 부분이다. 총회에서 충북고 벽문학회 발전기금을 조성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초기부터 발행된 문집을 디지털화하고 내년 40주년기념 행사를 열기로 했다.

최 교사는 “예전 19기 벽문학회원 활동할 때 20주년 행사를 준비했다. ‘20주년 기념 시전’을 예술의 전당 대전시실에서 열었다. 거의 모든 선배들이 다녀가고 전시된 작품만 130 작품이었다”며 시를 쓰고 교류하며 자부심이 대단했던 고교시절을 떠올렸다.


당시 청주시내 대부분의 고등학교에 문학써클이 있었고 연합 시전을 열었다고. 청고의 ‘원탑’ 세고 ‘청록’ 청주여고 ‘백합’ 충북여고 ‘결’ 등 자발적인 문예활동이 활발했다면서 “나중에 보니 결혼으로 이어진 친구들이 꽤 있었다”고 귀띔했다.

“당시 벽문학 회원들은 스스로를 ‘벽인’ 또는 ‘벽돌’이라 부르며 쌓거나 부숴야 할 존재로 여겼다”는 말은 벽문학 회원들이 시를 쓰며 젊음을 고뇌한 시간을 더듬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신문배달을 하며 학교에 다니면서도 시를 놓지 않았던 선배, 사회에서 각자의 일을 하면서 벽문학 회원인 것을 잊지 않고 있는 선배들의 전통을 이어가는 고교문학회의 부활과 청춘들의 진지한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