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계 프랑스인 소설가 샨사의 ‘허스토리’ <여황 측천무후>

김숙종
전 충북농업기술원장

얼마 전 중국 시진핑 주석과 부인 펑리 위안이 한국을 방문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모두 환영했다. 양국 정상들의 교차 방문과 정상회담을 통해 정치·경제·외교 등 시대적 과제를 풀어가기 위한 열쇠를 함께 만들어가는 관계를 보며 양국 역할에 큰 기대를 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과 중국은 긴 역사에 수많은 스토리를 만들며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속해 왔다. 이처럼 중국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는 요즈음 오래 되었지만 또렷하게 기억되는 두 권의 책이 있다. 그 하나는 당나라의 측천무후를 재조명한 <여황 측천무후>이고 다른 하나는 청나라의 서태후를 주인공으로 쓴 <서태후>이다.

▲ 제목: 여황 측천무후 지은이: 샨사 옮긴이: 이상해 출판사: 현대문학
<여황 측천무후>의 저자 샨사(Shansa)는 중국계 프랑스인 소설가로 중국 북경에서 태어나 여덟 살 때 시를 쓰기 시작해 10대에 시집 ‘눈(雪)’을 출간하면서 ‘장래가 촉망되는 북경의 별’로 선정됐다.

그는 17세 때 천안문 사태를 맞으며 이듬해 프랑스 파리로 가서 그리스철학과 플라톤의 이상주의를 공부해 7년 만에 프랑스어로 쓴 첫 소설 <천안문의 여자>로 데뷔했다. 이후 <버드나무의 네 가지 삶> 발표에 이어 <바둑 두는 여자>를 내놓았다. <바둑두는 여자>는 프랑스의 고등학생들이 가장 읽고 싶은 책으로 선정했다. 또 샨사는 <여황 측천무후>와 <음모자들’>을 선보여 프랑스 독서계에 샨사 열풍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나는 중국이 벼려내고 서양의 불 속에 담금질된 칼’이라고 표현했다.

특히 장편소설 <여황 측천무후>는 프랑스 굴지의 두 출판사가 판권을 놓고 법정 분쟁이 되어 프랑스 출판계에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이 책은 가장 중국적인 소재와 정서를 프랑스어로 정련하여 보편화시키고, 인간 심층의 욕망을 시적 표현으로 투명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샨사는 중국 서안시 건현 양산에 있는 당나라 고종황제의 비석 옆에 아무 글도 새겨져 있지 않은 측천무후의 비석을 보며, 남성들의 점유물 ‘히스토리history’가 아닌 ‘허스토리herstory’ ‘측천무후’를 구상했다.

‘히스토리’와 ‘허스토리’는 다르다

남성들의 입장에서 쓰여진 히스토리는 측천무후를 권력욕에 사로잡힌 표독스런 여성의 상징으로 만들어놓았다. 실록은 그녀가 황후 찬탈을 위해 고종의 황후 왕씨에게 자신의 딸을 교살한 죄를 뒤집어 씌웠다고 전하고, 역사가들은 그녀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 큰아들 홍을 독살했다고 비난하며, 소설가들은 성적 환상을 투사시켜 그녀를 방탕한 요부로 묘사했다. 그러나 샨사가 보는 관점과 구상은 아주 다르다

샨사의 소설 <여황 측천무후>는 무측천 본인 1인칭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태아시절부터 시작한다는 것에서 추론할 수 있듯이 이 여자 아이(본래 이름은 조)는 결코 범상치 않다. 읽으면 읽을수록 눈을 뗄 수 없는 묘한 매력이 있다.

지금까지의 남성 일변도의 고루한 관점과 생각을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샨사 특유의 우아하고 탐미적인 느낌을 풍기는 간결한 문체에서 꽤나 독특함이 느껴진다. 또 중국 본토인이 바라보고 되씹어 놓은 섬세한 표현에 기죽고 작가의 계획에 따라 쉽게 끌려가며 스토리에 빠져들고 만다.

그렇다면 샨사는 텅 빈 비석이 강변하고 있는 측천무후의 허스토리를 어떻게 풀었을까? 당나라 고종(高宗)의 황후 측천무후(則天武后·624~705)의 일대기를 소설화하고 그녀의 팔십 인생을 격렬한 문장으로 풀어 놓음으로써 치마를 입은 마키아벨리 측천무후가 광활한 중국 제국을 넘나들며 펼치는 한편의 대서사시가 되었다. 책에서는 측천무후를 특별한 정신적 깊이, 뛰어난 판단력과 자기관리 능력 등을 갖춘 인물로 그렸다.

작가는 이 고난을 지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자존심 강한 프랑스 예술계를 열광시켰다. 그의 천재성은 미래의 문호를 예고하고 있다는 평까지 받았다고 하니 앞으로 샨사의 글이라면 시간을 쪼개서라도 모두 섭렵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새천년 시대! 중국과 한층 가까워진 요즈음 더운 여름이지만 책속에 빠져 당나라 여황 측천무후와 함께 피서를 즐기는 것도 참 좋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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