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재표 그림: 옆꾸리

우금리에 사는 가난한 여자 보개에게는 아들이 있었는데 장춘이라고 불렀다. 그는 바다의 장사꾼들을 따라다녀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다. 그의 어머니가 민장사 관음보살 앞에 나아가 7일 동안 기도를 드리니 장춘이 갑자기 돌아왔다. 그동안의 일을 묻자 장춘이 말하였다.

“바다 가운데서 큰 바람을 만나 배가 부서져 함께 탄 사람들은 빠져나오지 못했는데, 저는 판자조각을 타고 떠내려가 오(吳)나라 바닷가에 이르렀습니다. 오나라 사람들이 저를 거두어서 들에서 밭을 갈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스님이 마치 고향에서 온 것처럼 은근히 위로하더니 저를 데리고 함께 갔습니다. 앞에 깊은 시내가 나타나자 그가 저의 겨드랑이를 끼고 건너뛰었는데, 어렴풋이 우리 마을의 말소리와 우는 소리가 들리기에 보니 바로 여기였습니다. 해질 무렵에 오나라를 떠났는데, 여기에 도착한 것은 겨우 술시(戌時)였습니다.”
<삼국유사 탑상 제4 민장사 중에서>

우리가 사는 이 시대 학교에 부적응아들이 있는데 골통이라고 부른다. 그들에겐 바닥의 짱이란 오명이 따라다녀 모든 교화가 소용이 없었다. 지방선거 결과 민선 교육감이 취임한 7월 이후로 학교가 바뀌니 골통들이 돌아온다. 그동안의 일을 묻자 한 골통이 말하였다.

“바닥 가운데서 큰 바람(望)도 없고, 모두들 현실에서 빠져나올 생각도 하지 못하고서, 판자조각을 타고 떠내려가듯 우리들이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온 나라 사람들이 우릴 손가락질해 들에서 밭이나 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쌤님이 마치 옛날 부모님의 모습처럼 은근히 위로하더니 우리와 함께 가잡니다. 앞에 깊은 시련이 나타나도 그가 우리 겨드랑이를 끼고 건너뛸 것 같은데, 어렴풋이 우리들의 말과 우는 소리까지도 들어줄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벌써 인생을 다 산 것 같았는데, 이제와 생각하니 우리는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진보교육감이 실험대에 올랐다. 17명의 교육감을 우리 손으로 뽑은 지난 6.4지방선거에서 무려 13명의 진보교육감이 선출됐다. 김병우 충청북도교육감도 이 중에 한 사람이다. 김 교육감의 취임 첫 결재는 ‘0교시 폐지’였다. 희망과 함께 그의 앞에 펼쳐질 가시밭길을 공감한다.

“사과 속의 씨앗은 셀 수 있지만 씨앗 속의 사과를 셀 수 없다”고 말하던 그의 소신을 응원한다. 공부를 포기한 자식에게 부모는 ‘그래도 영어단어라도 외우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김연아나 류현진이 0교시나 야자에 그의 소중한 ‘1만 시간’을 빼앗겼다면…. 아이들에게 장래 필요할 언어는 미리 알 수 없다. 평생 한국말 하나로 충분할 수 있고, 중국어, 일어, 베트남어가 필요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필요하면 스스로 배운다는 것이다. 위의 이야기는 그래서 간절한 바람을 적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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