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표 객원기자

▲ 이재표 객원기자
잠시 들떴었다. 바다 없는 동네라는 명제만큼이나 총리 한 명도 내지 못한 동네라고 떠들어오던 차에 충북은 잠시 총리후보자를 가졌다. 그러나 청주 출신인 문창극 후보자가 6월24일 사퇴했다. 지명된 지 14일 만이다. 문 전 후보자는 물러나면서 “저를 불러주신 분도, 거둬들일 수 있는 분도 그분”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언론은 ‘그분’을 대통령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사실 충북은 그를 몰랐다. 변재일 의원이나 안재헌 전 여성부 차관 등 청주중학교 동창들은 문 전 후보자를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정치판의 호사가들조차도 문창극이라는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흑암 속에 있던 그를 불러주신 분은 대통령이 맞다.

또한 그를 거둬들인 분도 박근혜 대통령이 분명하다. 문 전 후보자가 쏟아냈던 과거 친일, 반민족 발언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이 공분했던 것은 맞다. 또한 야당이 이를 정치공세에 활용했을 수도 있다. 여당의 신진, 중진 정치인들조차도 문창극 총리라는 카드를 부담스러워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재가를 보류하면서 결국 그를 물러서게 만든 것은 대통령이다.

문 전 후보자는 물러나는 순간에도 언론과 정치권에 대한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법치의 모범을 보여야 할 곳은 국회다” “언론의 생명은 진실 보도”라고 항변했다. 그가 청문회에 서지 못한 것은 오직 자신의 과거 발언과, 그 발언에 정치적 부담을 느낀 대통령의 판단 때문인데도 말이다.

과거 김용준으로부터 최근 안대희, 문창극까지 감히 ‘일인지하만인지상’의 권력을 쥐기에는 흠결이 많아서 청문회에 설 수 없는 이들을 골라낸 대통령과 청와대의 인사검증시스템은 적폐를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개조가 시급한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대통령이 법치라는 장치를 활용해 그래도 재가를 보류했다는 사실이다.

문 전 후보자가 총리감이 아니라는 것은 ‘조부 추정’에서 절정을 이뤘다. 문 전 후보는 “3.1운동 이후 순국한 독립투사 윤남규 선생이 자신의 증조부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조부가 누구인지를 추정해야하는 내력에 대해서는 추측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최근까지는 추정되는 조부에 대한 자긍심이 크지 않았던 것 같다.

더욱 분명한 것은 설사 윤남규 선생이 문 전 후보자의 할아버지가 맞더라도 조부의 삶이 그에게 우산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정말 조부가 맞는다면 오히려 자신의 말과 행동이 조부의 삶에 누가 되지 않았는지 살펴야할 것이다.

충북이 낳은 문호이자 독립운동가면서 북한 부주석을 지낸 홍명희의 부친은 경술국치에 분개해 자결한 순국열사 홍범식 금산군수다. 또 홍명희의 조부는 일진회의 거두로 친일에 앞장선 홍승목이다. 홍승목은 아들의 장례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우리는 홍명희와 홍영식, 홍승목에 삶에 대한 평가에서 교집합을 갖지 않는다.

그래서 문 전 후보자의 그분이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자신을 총리의 문턱에서 물러서게 만든 절대자의 뜻은 무엇인가 묵상의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분이 ‘너희 민족에게 시련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처럼 독실한 문창극 장로에게도 시련을 준 뜻이 있을 테니 말이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