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재표 그림: 옆꾸리


“저는 고향으로 향할 것이니 당신은 남쪽으로 가십시오.”
그리하여 조신은 이별을 하고 길을 가다가 꿈에서 깨어나니, 희미한 등불이 어른거리고 밤이 깊어만 가고 있었다.
아침이 되자 수염과 머리카락이 모두 하얗게 세어 있었다. 조신은 망연자실하며 세상일에 전혀 뜻이 없어졌다. 고달프게 사는 것도 이미 싫어졌고 마치 100년 동안의 괴로움을 맛본 것 같아 세속을 탐하는 마음도 얼음 녹듯 사라졌다.
<삼국유사 탑상 제4 낙산의 두 관음과 정취, 조신 중에서>

“저를 불러주신 분도, 거둬들일 수 있는 분도 그분입니다.”
그리하여 창극은 사퇴를 하고 집에 돌아와 꿈에서 깨어나니, 희미한 추억이 어른거리고 밤이 깊어만 가고 있었다.

아침이 되자 몇 올 남지 않은 머리카락이 모두 세어 있었다. 창극은 망연자실하여 세상일에 울분만이 느껴졌다. 고달프게 사는 것은 원래 싫었었고 마치 100년 동안의 괴로움을 맛본 것 같아 세상을 탓하는 마음도 불이 붙듯 일어났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사퇴했다. 버티다 버티다가 대통령의 마음이 떠난 것을 알고 물러선 것이다. 임명동의안을 재가하지 않은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그러고 보면 불러주시고 거둬들인 그분은 대통령이 맞다. 그런데 국민과 언론, 정치권을 원망하고 있다. 다만 민족사의 비극을 모두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말했던 전례에 비춰보면 그분은 ‘갓(GOD)’일 수도 있다.

문 후보자가 낙마했다고 쾌재를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야당 의원들이 아니다. 여당 의원들은 더더욱 아니다. 국민들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들은 바로 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국정원장, 장관 후보자들이다. ‘총리후보가 날아갔으니 우린 별 일 없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창극의 낙마로 모든 죄가 사하여졌다고 착각하지 마라. 창극은 당신들의 죄를 대속(代贖)한 구세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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