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만큼 잘 볼 수는 없지만 훨씬 더 잘 들을 수는 있어요. 하지만 시각장애인들은 거대 방송사나 각종 미디어로부터 소외되어 있어요. 소출력 라디오는 이들에게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효자동에 위치한 서울 맹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대학생 전동익(26·사진)씨는 라디오가 아이들의 삶을 좀더 풍성하게 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서울맹학교는 시력이 약하거나 완전히 시력을 잃어버린 아이들이 다니는 특수학교로, 그는 이곳에서 초등학교 5~6학년 아이들에게 매주 금요일마다 라디오 프로그램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효과음부터 녹음하는 방법, 라디오를 통해 자기 생각 표현하기 등을 함께 공부합니다.

시각장애만 있을 뿐이지 지능은 보통의 또래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요. 오히려 더 똑똑해서 제가 배울 때가 많아요.”그래서일까. PT병에 물을 채워 안일하게(?) 준비해간 쥐가 물 위를 살살 걷는 소리 효과음의 정체를 단박에 들켜 얼굴이 벌겋게 되기도 했고, “괜히 나 때문에 마음고생이 많다”는 한 아이가 부모에게 띄우는 음성편지를 듣고 뭉클하기도 했단다.

처음에는 녹음기를 들이대면 창피하다며 도망가던 아이들도 이제는 간단한 기자재도 능숙하게 다룰 정도가 됐다.

7월 중순에는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만화를 각색한 라디오 드라마를 발표하는 자리도 갖는다.

순간 즐거운 상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 아이들이 자신들만의 라디오 방송을 소유하고 직접 프로그램을 제작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매끄럽지는 않겠지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기존 방송보다 시각장애인들에게 한층 가깝게 느껴질 것은 분명하다.

또 부모들에게 평소 서로 나누지 못했던 얘기와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지자체에 꼭 필요한 정책을 요구하는 공론의 장이 될 수도 있다.

전동익씨가 생각하는 소출력 라디오의 매력도 바로 여기에 있다.

“기존 언론사나 방송사는 일반적이거나 거대 담론만 다루는 경향이 있잖아요. 하지만 소출력 라디오는 같은 관심사를 가진 지역 공동체나 지역문화를 활성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까지 지상파에 기대하는 건 무리 아닙니까? 소규모 커뮤니티를 활성화시키고 제작에 시민들이 참여토록 보장해 다양한 여론을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는 소출력 라디오가 활성화를 위해 장비 대여나 교육이 지속적으로 가능한 지역 미디어센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외국의 경우에는 지역마다 센터가 있어서 장비나 교육 여건이 좋은 편이라는 것이다.

“녹음장비인 MD는 고가라서 사려면 200만~300만원이 듭니다.

마이크도 좋은 것을 사려면 80만원이 훌쩍 넘어요. 여기에 헤드폰 등 일부 기자재와 송출장비를 모두 갖추려면 추가비용이 더 듭니다.

기존 방송사보다 저렴하기는 하지만 개인이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것을 정부나 지자체가 지원하는 지역 미디어센터가 도와주는 것이지요.”봉사활동을 한번도 할 기회가 없어 콤플렉스 아닌 콤플렉스가 있었다고 말하는 그는 어느새 아이들과 소출력 라디오의 강력한 후원자가 된 것 같았다.

그가 상상하는 공동체 라디오가 얼마나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보다 기름진 땅으로 인도할 것 같은 믿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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