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읽으면 딱 좋은 이덕일의 <정도전과 그의 시대>

전명순
청주 파레트도서관 주민사서

TV 드라마 ‘정도전’이 인기를 끄는 요즘 이덕일의 <정도전과 그의 시대>를 읽었다. 고려는 귀족사회로 대대로 부와 명예, 권세가 세습된 나라이다. 고려는 여러 차례의 이민족의 침입을 받았으며, 수십 년 동안 원에 의해 내정간섭을 받아왔다. 원나라의 간섭기 중 공민왕은 자주적 개혁을 시도하지만, 개혁추진세력들이 개혁의 대상과 겹쳤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

정도전은 공민왕 집권기에 처음 출사하게 된다. 충선왕 시절 연경의 만권당(萬券堂)을 통해 고려로 성리학이 유입되면서 신흥사대부들이 등장한다. 우왕 원년 고려는 다시 친원주의자들이 득세하게 되었으며, 신흥사대부들은 친명을 주장하고 나섰다. 정도전에게 원나라 사신 접대의 명령이 떨어졌고, 이를 거부하다 유배형에 처해졌다.

정도전은 9년의 귀양살이동안 민중의 삶을 되돌아보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토지제도의 폐단을 깨닫고 개혁을 준비한다. 힘 있는 자가 가난한 자의 토지를 빼앗으며, 토지의 주인이 여러 명이 나와 8~9할의 세를 받아가니 채 1할이 안 되는 곡식으로 처자식을 어떻게 먹여 살릴 것인가? 가난한 자는 송곳하나 꽂을 땅이 없어 결국에 노비로 전락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귀양이 풀린 후 동북면에서 이성계와의 운명적이 만남이 이루어졌다. 이들의 만남은 정도전의 사상과 이성계의 군사력의 결합을 뜻하는 것이었다. 정도전은 사전을 몰수해 국가 소유로 돌리며 모든 백성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자는 ‘계민수전(計民授田)’의 필요성을 설명하였다. 정도전은 이성계의 추천으로 다시 조정에 다시 나가게 된다.

이성계, 처음부터 조선 왕 등극 아니다

▲ 제목: 정도전과 그의 시대 지은이: 이덕일 출판사: 옥당
공민왕 때 회복한 철령 이북의 땅을 명나라에 반환하라고 요구해오는 사건이 일어났다. 우왕과 최영은 이성계에게 요동 정벌의 명을 내렸다. 이성계는 ‘4불가론(四不可論)’을 들어 요동정벌을 반대한다.

첫째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에 거역해서는 안 되고, 둘째 여름 농번기에 군사를 일으켜서는 안 되며, 셋째 온 나라 군사를 동원해 원정에 나서면 왜적이 그 틈을 탈 것이고, 넷째 장마철이라 아교가 녹아 활이 눅고, 대군이 질병에 걸릴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회군한다(1388년6월). 우왕과 창왕을 신돈의 후손이라 주장하며 폐하고 정창군을 추대하였으니 그가 바로 공양왕이다. 신돈의 후손이라 하는 것은 후대에 자신들의 대업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말이다.

정도전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전제개혁을 단행하려하였다. 사전혁파는 고려 왕조가 존속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못할 것인가를 가르는 중요한 문제였다.

이색 등의 반대로 시행되지 못하다가, 조준의 제안으로 현직·퇴직관리에게 수조권을 주되 경기도에 한해서만 적용되는 과전법(科田法)을 시행하였다. 국가에서 과전을 받은 벼슬아치는 수확량의 10분의 1을 조(租)로 걷고, 받은 곡식 중 10분의 1을 국가에 세(稅)로 내는 것이다.

이런 개혁으로 이성계는 백성들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 이성계는 백관의 추대와 공양왕의 양위를 받아 고려의 국왕 자리에 올랐다. 나라이름도 그대로 고려라 하고 의장과 법제도 고려라 했다. 이성계가 처음부터 조선의 왕으로 등극한 것이 아니었다.

한양천도를 주장한 정도전

정도전은 신덕왕후의 아들인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면서 이방원과 틈이 벌어져, 결국 그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강력한 왕권을 꿈꾸던 이방원과는 뜻이 맞지 않았다. 정도전은 왕이 중심인 나라가 아니고 왕권과 신권이 조화를 이루는 왕도정치를 표방하였기 때문이다.

정도전은 조선 내내 역적으로 입에 이름을 올릴 수 없었다. 그렇지만 경국대전의 기반이 되는 ‘조선경국전’을 만들고, 한양천도를 주도하였다. 경복궁을 비롯한 성문 등의 이름을 지으며 유교 덕목의 가치를 부여해서 유교적 이상를 실현하려 하였다.

정도전을 빼고는 조선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조선은 결국 위민 사상가인 정도전에 의해서 토지개혁이 단행되었기 때문에 건국 된 나라라 할 수 있다. 고려는 이미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토지개혁이 이루어졌더라도 그리 오래 갈 수 없었을 것이다.

현재 사회에서도 소수의 대기업들에 의해서 경제가 돌아가고, 그 부가 세습되는 것을 보면 고려 말의 상황이랑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혼란스러운 때 대책을 세워야 하거늘 서로가 책임공방을 하며 지방선거의 승패를 운운하고 있으니 말이다.

당선자들은 공약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 각자 맡은 자리에서 시민들의 처지를 헤아리며 봉사하는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정도전과 같이 백성의 입장에서 대변할 그런 위민사상가가 나오길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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