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표 객원기자

▲ 이재표 기자
지난 대선 못지않게 국민여론이 팽팽하게 맞섰던 6?4지방선거가 끝났다. 누가 이기고 누가 졌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얄팍한 게 인심이라고 세월호 희생자 288명을 바다에 묻고 16명의 넋을 건지지도 못한 국상(國喪)의 상태에서 우리는 살아서 선거를 치렀다. 염치없게도 정치권은 물론 정치에 민감한 국민들은 결과를 예측하고 기다리면서 머릿속에서 복잡한 주판알을 튕겼다.

새누리당은 내심 만세를 부르고 싶을 것이다. 대통령을 필두로 정부와 여당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무능을 넘어 부패와 협잡의 모든 것을 보여준 것을 감안하면 야당과 국민은 아무 것도 심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면죄부를 얻었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기사회생한 셈이다. 불과 두 달 전을 기억하라. 대통령에 대한 국정지지도나 정당지지도를 고려할 때 처참한 침몰이 예상됐으나 세월호 정국에 기대어 그나마 반타작에 가까운 선거를 치렀으니 말이다. 당은 침울하지만 당선자들은 환호하고 있다.

거대 양당(兩黨)은 일면 이기고, 일면 졌다. 누구도 이겼다고 말할 수 없고 말해서도 안 된다. 승자는 없다. 다만 패자는 오직 유권자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유권자 앞에는 지방선거라는 밥상이 차려졌다. 마음대로 골라먹으라고 숟가락, 젓가락도 놓였다. 그러나 밥상 위에는 단 두 개의 반찬만 놓였다. 쉰내 나는 묵은지와 짜디짠 장아찌가 전부였다.

거대 여당을 찍자니 ‘가만히 있으라’는 세월호와, 대한민국호 선장의 명령이 마음에 걸렸다. 제1야당을 찍기에는 나라를 구조하겠다는 그들의 약속이 미덥지 않았다. 국민은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사전투표라는 획기적인 제도가 도입됐음에도 투표율은 60%를 넘지 못했다. 막상 수저를 들자니 입맛이 돌지 않았던 것일까.

1991년 지방의회 부활을 기점으로 지방선거는 23년째를 맞고 있다. 그러나 지방자치는 여전히 표류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는 여당 후보가 기초선거에 대한 정당공천 폐지를 공약했고 제1야당 후보도 이에 호응했다. 이 공약은 대선 판을 흔들었으나 당선자인 대통령이 약속을 어겼다. 약속을 어기고도 해명은커녕 한마디 변명조차 하지 않았다.

기초선거에 대한 공천폐지가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현행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은 정당이 책임을 지는 것이다. 기초일수록 정당의 책임이 중요하다. 아니면 깜깜이 선거가 되고 책임질 주체가 없다. 그런데 정치에 대한 모든 혐오를 지방정치, 그것도 힘없는(?) 기초선거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그 생각의 좌표가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현주소다.

지방선거의 모든 비용은 지방에서 부담하지만 지방선거와 관련한 모든 결정은 중앙에서 내린다. 선거구의 금을 긋고 지방의원의 정수를 정하는 것도 중앙이다. 전국동시지방선거라는 이름 아래 올해도 7장을 한꺼번에 찍었다.

대의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의 비효율성 때문에 유권자를 대리할 사람을 뽑는 것인데, 우리는 대표(代表)가 아닌 대표(大表)를 뽑는 지방선거를 하고 있다. 국그릇의 국물 맛이나 숟가락의 국물 맛이 같아야하는데 우리의 민주주의 그렇지 않다.

모든 유권자는 패배했다. 사실 이번 만 패배한 것이 아니라 늘 패배해 왔다. 이제는 지방자치의 틀을 바꾸자고 말해야 한다. 정당공천이 문제가 아니라 양당 구도가 문제다. 지방자치에 회의가 드는 것은 지방선거마저도 나라가 동과 서로 양분되는 양당 구도 아래 놓여있기 때문이다. 다음 선거에는 전국동시지방선거를 거부하는 도지사 후보가 출현하기를 기대한다. 이런 지방선거는 신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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