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진 서원대 음악학과 교수

▲ 이유진 서원대 음악학과 교수
지난 4월 이탈리아로 긴 연주여행을 떠났다. 3주간 이탈리아 4개 도시 순회공연을 한 것이다. 연주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지난 2월 한국과 이탈리아 수교 130주년에 초청되어 청주에서도 콘서트를 가진 알레산드라 아마라씨를 그녀의 도시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그녀의 초대로 피렌체 ‘meyer’어린이 전문병원에서 유쾌한 로봇연주회를 보았다. 이날 행사는 아픈 아이들을 위해 음악가들의 재능기부로 이루어졌다고 했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인기가 좋은 52개의 손가락을 가진 피아니스트로봇은 연주뿐 아니라 노래, 대화도 가능했다.

베를린 필하모니와 협연도 했다하니 눈앞에서 보고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처음에 관객 중 환자가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공연을 관람하는 의사, 간호사 어린이환자들도 이날 만큼은 의사 가운을 벗고 정장을 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환자복을 벗고 평상복을 입는다고 했다.

아픔을 잊고 일반인들과 똑같이 즐겁게 공연을 감상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는데, 실제로 공연 후엔 환자들의 상태가 수치로 나올 정도로 호전된다고 한다.

공연 중 인상적인 것은 진행자이자 피아니스트인 알레산드라 아마라씨와 로봇이 서로의 실력을 뽐내며 겨루기도 하고 대화 중 다투기도 하는데 그러한 모습이 관중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다. 기계와 인간이 어우러지는 모습은 낯설기도 하고, 또 예상치 못한 풍경이 신기하기도 하다.

하지만 공연 내용은 아무리 실수가 없고 기교가 뛰어난 로봇피아니스트라도 인간이 전달하는 감정, 즉 희노애락을 로봇이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공연은 기계가 대체 할 수 없는 분야가 예술이라는 메시지도 함께 전달하고 있지 않았을까. 공연이 끝난 후 우리는 그녀와 함께 근처에 있는 그녀의 친정집으로 향했다. 그녀의 부모님은 우리를 위해 직접 담근 25도가 넘는 레몬주를 내어주었다.

알렉산드라 아마라씨 뿐만 아니라 그녀의 남편도 유명한 피아니스트다. 그래서 그녀의 부모님은 한국의 할머니들처럼 바쁜 딸을 위해 두 손주를 기꺼히 돌봐주시고 계셨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유난히 잘 따르는 해맑고 인형같이 예쁜 두 아이, 그리고 우리 둘은 주부로서도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대화가 한참이나 이어졌다.

늦은 밤 피렌체에 잡은 호텔로 돌아오는 길, 그녀의 음악의 힘이 결국 그녀의 ‘가족’ 임을 알게 됐다. 예술가로 살아가는 일은 경제적인 부보다는 정신적인 풍요를 선사한다. “예술은 먹을 것을 주지 않지만 위로가 된다.”

피렌체에서의 밤은 더욱 깊어졌고, 그 말은 머릿속을 계속해서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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