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표 객원기자

‘교활하다’는 꾀가 많고 간사하다는 뜻이다. 한자단어는 교활할 ‘교(狡)’에, 교활할 ‘활(猾)’자로 구성됐다. 그러나 교활(狡猾)이 동물의 이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교와 활은 중국 책 ‘산해경(山海經)’에 등장하는 각각의 동물이다. 물론 용과 마찬가지로 상상 속에만 존재한다.

먼저 교는 개를 닮았는데 온몸에 표범 무늬가 있고 머리에는 쇠뿔이 있다고 한다. 또 교가 세상에 나타나면 큰 풍년이 든다고 해서 사람들은 누구나 교의 출현을 기다렸다. 문제는 교가 나타날 듯 말 듯 애만 태우지 실제는 출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풍년을 바라는 간절한 민심을 기만하는 놈인지라 불명예스러운 단어, 교활의 첫 음절이 됐다.

활은 사람처럼 생겼는데 온몸에 돼지털이 났다고 하니 생김새부터 흉악할 터였다. 울음소리는 도끼로 나무를 찍는 소리를 닮았다고 한다. 활은 호랑이 같은 맹수를 만나면 몸을 공처럼 만들어 스스로 먹혔다. 이는 내장을 파먹기 위한 술책이었다. 활은 고통을 견디지 못해 죽은 맹수의 몸에서 빠져나와 소리 없이 웃는다고 한다. ‘교활한 미소’라는 관용구는 그래서 태어났다.

늘 느끼지만 신화는 사실성을 떠나 극적이면서도 구체적이다. 밑도 끝도 없는 상상력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인간과 세상의 단면을 풍자하기 위해서 작심하고 지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교와 같은 인간이 있다. 활과 같은 인간도 있다. 교활한 인간은 예로부터 있었을 것이다.

선거는 약속의 축제다. 쥐구멍 같은 서민들의 삶에 금방 환한 빛을 비쳐줄 것만 같은 기대감을 준다. 농경사회에서 대풍에 대한 소망처럼 말이다. 그러나 지켜지지 않는 약속이 많아 공약(公約)과 함께 공약(空約)이라는 단어까지 국어사전에 등재되고 말았다.

‘대학등록금을 반값으로 줄이겠다, 70%의 노인에게 매달 20만원을 주겠다, 기초선거는 공천하지 않겠다’는 약속 등이 대표적인 공약(空約)이었다. 이같은 약속은 선거판도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실현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교(狡)의 전설’과 다를 바가 없다.

정치인들은 선거기간에만 종이 되어서 유권자들 앞에서 굽실거린다. 선거철에는 어디든 찾아간다. 평소에는 얼씬거리지도 않던 재래시장에 가서 비린 생선을 맨손으로 만져도 보고, 어묵이나 떡볶이도 맛있게 먹는다. 선거기간에만 권력자인 유권자의 심중(心中)으로 몸을 던지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투표권자들은 행사장에, 경로당에 한 번 더 찾아와 손을 잡아준 사람에게 표를 던진다.

유권자들이 극심한 복통을 느끼는 것은 활(猾)과 같은 정치인이 결국 본색을 드러냈을 때다. ‘○○를 찍은 손을 자르고 싶다’는 이를 여럿 봤지만 자른 이는 보지 못했다. 교활한 정치인은 그 뒤에서 교활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기억에서 지워버리고픈, 그러나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세월호 참사’에서도 교활한 인간군상을 본다. 재난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굳이 확인해주는 청와대, 따로 노는 정부부처, 권력기관과 친위세력의 유착, 돈에 혈안이 된 기업인과 무책임한 선장, 정부의 발표만 되뇌는 언론….

우리는 침몰하는 세월호를 통해 사람의 탈을 쓴 교와 활이 국가를 난파시킬 수도 있다는 위협감과, 바꿔야 한다는 위기감을 동시에 느꼈다. 6?4 지방선거가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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