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수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조직위원장

얼마 전 강원도 삼척에 사는 후배가 청주를 다녀갔다. 그는 전문 잠수요원으로 잠수를 업으로 하는 바다 사나이다. 바다는 그의 삶이며 생명이다. 일부러 동해바다에서 가지고 온 새우를 안주 안주 삼아 모처럼 맛난 술잔을 나눴다. 만남의 기쁨도 잠시, 몇 순배가 지나지 않아 그의 얼굴은 슬픔으로 일그러졌다. 진도 팽목항에 다녀왔다며, 참혹해서 얘기를 할 수가 없다며 긴 한숨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후배의 얘기는 이렇다. 사고 첫날인 지난달 16일, 이른 아침 배가 좌초됐다는 문자를 받고 팽목항에 도착했을 때 배는 물위에 서 있었다. 전국에서 유능한 잠수부들이 자원봉사를 위해 속속 달려왔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바다에는 들어 갈 수 없었다. 일분일초가 아까워 발을 구르고 목청을 돋우며 관계자들과 씨름하는 동안 배가 완전히 침수하는 것을 보았다. 그때 자신들을 들어가게 했어도 많은 생명을 살렸을 거라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미웠다고 말했다. 후배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소주를 들이켰다.

4월 16일 오전 라디오를 통해 뉴스 속보가 전해졌다. 인천에서 제주로 항해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부근 해상에서 침몰 중이고 수학여행 학생 등 승객 471명이 탑승했으며, 학생들은 모두 구조됐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5월 13일 현재 언론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로 인해 사망자 수는 275명, 실종자 수는 29명이다. 그동안 탑승객, 실종자 사망자 수는 7번이나 번복됐다.

뉴스속보로 전해지는 TV화면 안에서 서서히 기울어 가는 세월호는 배를 바로 잡는 사람도, 선실에 있는 사람을 구조하는 사람도 없었다. 국민들은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배를 넋 놓고 바라보며 밤새 발을 구르며 가슴을 칠 수 밖에 없었다.

국민들이 절규하며 우는 동안 해경은 사상 최대의 구조장비를 동원해 수색을 하고 있다는 보도 자료를 만들었고, 사회재난을 총괄하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우왕좌왕했다. 팽목항을 찾은 대통령 및 정부 부처관계자는 구조보다 의전 및 생색내기에 급급했고, 정치인들은 부적절한 언행으로 유가족을 거듭 울리며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한마디로 정부는 참을 수 없이 가볍고 무기력했다.

국가의 재난안전 컨트롤의 부재로 인해 젊은 학생들은 꽃피지도 못한 채 떠났고 우리 사회의 민낯은 여실히 드러났다. 경제발전이라는 커튼 속에서 이 사회는 생명경시, 정경유착,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을 자랑하던 대한민국호도 세월호와 침몰하고 말았다.

노란 리본이 바람에 휘날리는 길을 지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어른인 것이 부끄러워, 오늘의 이 슬픔 잊지 않을게… 수많은 반성도 함께 휘날린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하고 행복한 생활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설파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대한민국에서 너무도 가볍다.

이제 정부가 답을 할 차례다. 어떻게 책임을 지고 어떤 방식으로 국가를 운영할 것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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