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색깔이 점점 퇴색되어 가는 것을 느끼고 먼 곳이 그리워지면 푸른 산을 꿈꾼다.

오늘 일상에서 벗어나 산행을 떠나기로 한날, 여름으로 성큼 들어선 유월의 하늘은 불붙은 담요가 떠있는 듯 하다. 햇빛은 뜨겁고 후덥지근한 날이지만 불어오는 한줄기 바람은 상쾌하고 기분 좋게 온몸을 감싼다.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은 누구든 유년시절로 되돌아가듯 설레어 온다. 시원하게 뻗어있는 고속도로를 지나 산길로 접어드니 창 밖으로 보이는 산 속의 경치는 짙푸른 녹색의 향연이다.

깊은 산중이라서 인지 오월의 아카시가 뒤늦게 하얀 꽃송이를 조롱조롱 매달고 수줍게 미소짓는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산길이라서 일행 중에 멀미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그들을 외면한 체 숲 속 경치에 취해버린 나는 마치 마술에 걸린 것처럼 빠져들고 있었다. 제 색깔을 모두 찾아 입고 서 있는 나무들은 역동적인 젊음을 보는 것처럼 신선하고 쾌활하다.

기린의 굽과 같이 강이 합류하는 곳이란 뜻을 지닌 인제군 기린면에 위치한 해발 1.165 메타의 가칠 산. 원시림과 같은 숲 속이지만 더운 날이라서 산을 오를 때는 나 자신을 유혹해서 올라야 했다. 정상을 향해야 한다는 의지보다는 오르고 싶다는 욕망의 유혹이 더 컸다. 산행을 통해서 사색의 깊이가 더해지기 때문에 산을 오를 때를 가장 행복하게 느낀다.

그러나 항상 남들보다 앞서 정상에 오르던 나는 오늘 따라 맨 끝으로 쳐지고 있어 뒤에서 인솔 하는 이에게 괜스리 민망스럽다. 삶의 무게와 같은 배낭을 등에 지고 힘겹게 오른 가칠산 정상의 표지 석을 바라본다. 한줄기 산바람은 땀에 젖은 온몸을 서늘하게 식혀주고 숲속 그늘에 겸손하게 피어있는 노랑 양지꽃 한 송이가 살며시 눈을 맞춘다.

잠시 정상에 서서 산아래 이리저리 뻗어간 푸른 산맥들과 아름다운 들꽃을 보노라면 나 또한 어느새 이름 모를 들꽃이 되고 싶고 바람에 흔들리는 한 그루의 나무이고 싶다. 정상에서 하산하는 길로 인해 잠시 미심쩍었으나 앞서간 일 행을 따라 내려갔다. 올라 온 길보다 내려가는 길이 더욱 험하고 위험했다. 늦은 점심을 먹으면서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책임질 일이 없는 나는 어떻게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산을 내려와 갈림길에 섰을 때 당혹 감이 시리던 산악 대장님의 얼굴과 애써 위로하는 홍보위원, 지친 사람들의 표정에 잠시 마음이 어두워지기도 하였다. 얼만큼을 걸어야 인가가 있을 런 지도 모를 상황이었지만 나는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깊은 산중의 오솔길, 나무가 우거지고 산그늘이 지기 시작하는 그곳은 위로는 하늘과 산이 있고 길 아래는 계곡의 물이 산을 적시고 푸른 하늘을 비추며 흐르고 있어 감상적인 나는 마냥 걷고 싶었다.

그러나 어르신 한 분이 다리에 통증을 호소하면서 그 달콤하던 꿈은 무참히 깨어지고 말았다. 처음에는 별일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었으나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다. 어르신은 조금 걷다 멈추기를 반복하신다. 고통과 민망함으로 가득한 그분의 표정이 안쓰럽다. 더욱 놀라운 일은 뒤에 따라가던 세 남자들의 반응이었다.

귀찮아하거나 짜증내는 일 없이 마치 육친을 대하듯 다가가 침을 놔주고 물파스를 뿌려주며 부축해서 걷다가 교대로 어르신을 업기도 하며 간다. 더운 날씨에 혼자 걷기도 힘이 드는데 그들의 표정은 어르신에 대한 걱정만 있는 듯이 보인다. 나무를 잘라 들것을 만들어 태우고 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잔잔한 감동이 물결친다. 남에게 친절을 베풀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을 잠시 정지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그의 삶이 다른 이의 삶에 옮겨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정지된 그 시간이 얼마나 고맙고 아름답게 보이는지 존경심마저 생겨난다. 그리고 내면의 모습을 외면한 체 겉모습만 보고 그 사람의 인격을 결정해 버렸던 나의 그 어리석음이 부끄러웠다. 어르신도 세 남자도 지쳐가고 있을 때 눈이 커다랗고 푸근하기 만한 그녀가 트럭을 타고 우리 모두 를 데리러 왔다. 산행 때마다 궂은 일을 도맡아하던 그는 마치 여전 사와 같은 모습이다. 산악 대장님과 함께 뛰다싶이 내려가 온 마을을 돌며 트럭을 구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여전 사는 우리를 구하러 오고 대장님은 여기 위치를 몰라 핸드폰이 터지는 곳까지 산으로 올라가셨단다. 책임자라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모두가 나를 버리고 다른 이들을 위해 저토록 헌신 적일 수 있을까? 햇빛에 익어버린 그녀의 붉은 얼굴을 바라보면서 나를 뒤돌아본다. 너그럽지 못해 베풀 줄도 모르는 오만 때문에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나의 안일함만 생각하고 살아온 자신이 그녀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진다. 난생처음 타보는 트럭 위에서 다시 한번 그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순수하고 해맑은 표정들, 보면 볼수록 정답다.

먼지를 날리며 달리는 길옆으로 보랏빛의 고운 싸리 꽃들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이 계절의 향기로운 냄새를 손으로 낚아채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내 곁에 있으므로... 방동리 주차장에 도착해서 앞서 도착한 산악 대장님을 발견했을 때는 친정 붙이를 만난 것처럼 반갑고 든든한 마음이다.

19세기 이탈리아의 산사람이었던 귀도레이는 “노동처럼 유익하고” “예술처럼 고상하고” “신앙처럼 아름다운”산행을 원한다고 했다. 그것은 산에서 길을 잃고 이리저리 헤메일 때도 길을 찾기 위해 애를 쓰고 난 후에도 그렇게 말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서녁 하늘과 푸른 산마루를 붉게 물들이는 노을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감동과 사랑으로 가득 찼던 오늘 하루는 내 삶의 여정 속에서 뚜렷한 지표로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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