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유성기업노조 영동지회장 부인 한영희 씨의 당당·담담 인터뷰

옥천나들목 22m철탑 위에서 농성이 시작된 지 200일이 넘었다. 유성기업 노동조합 영동지회장인 이정훈씨는 광고탑 위에서 가을과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았다. 충남 아산과 충북 영동에 공장을 두고 있는 유성기업 노동조합은 2011년 5월 주간연속 2교대 근무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밤에는 잠자며 일하게 해달라는 게 노조 요구였으나 사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진/육성준 기자

이후 직장폐쇄와 해고 다시 복직과 해고가 이어지며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작년 10월 이씨가 철탑 농성을 시작한 이후 각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으나 사측은 아직 뚜렷한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잊고 있는 사이, 광고탑에서 200여일을 보낸 사나이. 그 사나이의 부인 한영희(48)씨를 지난 2일 만났다.

그는 “이렇게 오래 있게 될 줄 몰랐다. 3개월 정도로 예상했다. 날이 풀려서 그나마 다행이다. 한데서 잠을 자는 사람이 있으니 가족모두 실내온도를 낮추고 춥게 보냈다”고 말했다.

또 “남편이 머리가 길게 자라고 움직이질 못하니 몸에 살이 붙었다. 원래 마른체형이고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사람인데 힘든 내색을 안한다”고 걱정하면서도 “5월 2일 고공농성 200일을 응원하는 희망버스가 왔지만 일을 빠질 수가 없었다. 마트에서 일하는데 어린이날이 있는 연휴라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 마음은 그곳에 가 있지만, 이번에는 아이들과 어버이날에야 갈 수 있을 것 같다”며 생업을 위해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 상황을 담담하게 설명했다.

노조원들, 정해진 요일에 현장 지원

유성기업 노조원들은 주조과·생산과·정비과 등 부서별로 정해진 요일에 농성 현장을 방문한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영동지회,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아산조합원들이 맡고 있다. 담당요일에는 철탑에 올라가 있는 지회장의 식사와 외부 소통을 지원하며 현장을 지킨다. 복수노조로 조합원이 갈라지고 해고와 징계가 이어지면서 갈등이 깊어지는 과정도 겪었다.

영동이라는 좁은 지역사회에서 조합원은 이웃주민이기도 하다. 다행히 고공농성이 진행되면서 마음을 모으고 서로 힘을 보탰다. 3년 넘게 조합원들과 힘겨운 시간을 함께 보낸 한씨는 “자식들에게 보여줄 것이 있어야 한다. 나중에라도 할 말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 울어줄 사람이 있는 것도 자식에게 물려줄 유산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1980년대와 90년대에 유성기업에 함께 다니던 조합원들은 2교대근무와 잔업, 특근, 조출 등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공장에서 보냈다. 다른 조합원들도 마찬가지였다.

2000년 들어 장기간 야간근무는 노동자들의 생체 생활리듬을 무너뜨려 건강을 심각하게 위해한다는 우려 속에 관련 연구들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고질적인 자동차부품업계의 야간노동 관행이 노사교섭을 통해 하나 둘 주간연속 2교대 근무와 월급제로 합의해 나가던 중이었다. 유성기업 노사는 2011년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시행하기로 합의했지만, 이후 사측은 직장을 폐쇄하고 용역경비를 투입했다. 해고와 복직, 다시 해고와 징계가 이어졌다.

“하지 말라는 말을 한 적 없다. 1992년 쯤인가 노조일을 하면서 한동안 기본급 50만원만 가져왔다. 아이들이 다섯 살, 두 살 때였다. 월급봉투를 주면 매번 ‘수고하셨어요’하고 받았지만 혼자 빨래하면서 울었다. 친지나 이웃에 돈을 빌리고, 갚고 하며 살았다.” 한씨가 오래도록 유성기업 조합원의 동반자이자 동지로 힘들게 살아 온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이런 마음 쭉 오래도록…사랑합니다”

한씨는 지난 3월 고공농성 154일을 맞아 154대의 희망버스를 타고 온 노동자와 시민들께 감사의 편지를 전했다.

“그때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 하면서 지나온 시간을 하나씩 되짚어 보게 됐다. 같이 있는 사람들이 청춘을 노동에 바치고 한마음 한뜻으로 이렇게 있는 것에 감사했다. 남편이 혼자 올라가 있지만 모두 함께 하고 있어서 기뻤다. 그래도 내려와 사람들 가운데서 지속할 수 있다면 더 좋겠다. 날씨가 풀린 것도 감사하다.”

한씨는 사람들과 지면으로 만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조합원의 뜻을 알릴 수 있는 일이라면 하겠다고 했다. 이종훈 지회장이 올라가 있는 22m철탑에는 광고탑을 지지하는 버팀목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 씨는 남편과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는 것이 처음이라고 했다. 결혼 전 한씨는 서울 마포의 동네 미용실에서 일을 배웠다.

“바로 옆 마포가든호텔 인근에 배치된 의무경찰을 보며 군대 간 오빠 생각을 했다. 마음이 쓰여 자판기 커피를 뽑아 건넨 것이 인연이 돼 결혼까지 하게 됐다.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키우면서, 부모가 사랑하며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들에게 교육이고 재산이라고 생각해 왔다” 고 말하는 그에게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서민의 당당함을 볼 수 있었다.

한씨는 오늘도 철탑에 서있는 남편에게 숨겨둔 말을 전했다. “내가 사랑하는 만큼 당신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서로 사랑하면서 아무 탈 없이 살아가면 좋겠어요. 이런 마음 쭉 오래도록 가지고 가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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