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진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국장

공(公)과 사(私), 일상의 모든 곳에서 억지로 만들어지는 노력들이 우주(자연)의 질서와 법칙을 거스르게 하여 시대의 혼란을 만들어 낸다고 주장한 노자(老子)가 있었습니다.

노자가 바라보았던 세상은 위(爲, ‘억지로 ~하다’)하고자 하는 억지스러운 노력에 의해 법과 제도들이 만들어지고, 이 법과 제도에 맞추어 살아가고자 하였으나 이 또한 부족하여 또다시 법과 제도를 만들어 내는, 결국엔 만들어 낸 것들에 의해 스스로 구속된 인간들……. 노자는 인위적인 어리석음으로 가득 찬 세상으로 보았습니다.

스스로를 위한 가상한 노력이 노자에게는 왜 그리 헛되게 보였을까요? 노자는 본래부터 그러했던 자연(自然), 자연스러움이 세상의 본질인데, 억지의 노력은 그 본질을 깨뜨리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하나인 인간이 자연스러움을 깨뜨리는 것은 인간 본연의 본성(本性, 자연스러움)을 거스르는 행동으로 억지로 만들어낸 결과들은 결코 세상에 이로울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가장 자연에 가까운 본연의 인간다움을 갖춘 사람일까요.

노자는 물과 같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물은 항상 위에서 아래로 흐를 뿐이며, 동그란 그릇에 담아도 네모진 그릇에 담아도 그 안에 담길 뿐 주변과 다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물의 이러한 성질을 겸허(謙虛)와 부쟁(不爭)의 덕이라 정의하고, 스스로를 낮추고 주변과 다툼이 없는 덕을 지닌 사람이 자연스러운 사람이며 물과 같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물과 같은 자연의 본성을 지닌 사람이야 말로 세상의 무엇과도 조화를 이룰 줄 알며, 이러한 이가 군왕이 되면 무위(無爲)의 정치를 실현하며 백성들이 전원적 공동체 속에서 소박한 삶, 본성에 맞는 삶을 살게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뉴스보기가 두렵습니다.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을 통해 전해지는 소식들은 절대적으로 고통스러운 이야기들 뿐입니다. 분노한 국민들의 생각이 몇 줄의 문장에 압축되어 전해집니다. 문장의 단어들이 다를 뿐 지적하고 소리치는 목소리는 똑같습니다.

우리가 암묵적 동의하에 만든 제도, 가상한 노력의 결과물인 제도를 수단으로 악용한 사람들, 그 제도들로 인하여 공권력을 부여받은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어느 때 보다도 큰 상황입니다.
고통을 즐기거나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TV를 보며 고통스러워해야 하고, 우리가 뽑은 대표자들과 기관들의 상식적이지 못한 무능함에 우려하며, 저러한 이들이 우리가 부여한 권력을 대표하고 운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납니다. 우리가 투표로 선출했음을 자책하며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지위가 개인의 영달을 위한 수단이 아닌 그 지위의 이름에 맞는 목적 그 자체인 사람, 겸허한 자세를 갖고 공권력을 부여한 시민들에게 봉사?헌신하는 대표자, 다양한 주변의 요구와 다그침, 반대의 목소리에도 물의 덕을 발휘하여 다툼 없이 화합으로 이끌어내는 대표자. 우리에겐 이런 사람이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본연의 삶을 살고자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을 위한 사람, 물과 같은 대표자, 이런 사람을 찾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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