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재표 그림: 옆꾸리

승려 혜통은 그 씨족이 자세하지 않다. 속인이었을 때 그의 집은 남산 서쪽 기슭의 은천동 어귀에 있었다. 어느 날 집 동쪽 시냇가에서 놀다가 수달 한 마리를 잡아서 죽이고는 뼈를 동산에 버렸는데, 이튿날 아침에 그 뼈가 없어졌다. 그래서 핏자국을 따라갔더니 그 뼈는 옛날에 살던 굴속으로 들어가 다섯 마리의 새끼를 끌어안고 웅크리고 있었다. 혜통이 그것을 바라보고는 한참 동안 놀라워하고 탄식하며 머뭇거리다가 마침내 속세를 버리고 출가하여 이름을 혜통으로 바꿨다.
<삼국유사 신주 제6 혜통이 용을 항복시키다 중에서>


“아가야 얼마나 춥고 무서웠니?”

“아가야 너는 IMF로 나라가 시름에 빠져있던 1998년에 태어났다. 그때 우리 집은 안산 서쪽 기슭의 월곡동이었다. 엄마가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은 너를 낳았다는 것, 그 일보다 기쁨을 준일은 없었는데, 하루아침에 너의 모습이 사라졌다. 지금 너를 아직도 차디차고 검고 깊은 바다에 버려두고 있는 이 엄마는, 바다 속으로 들어가 너의 몸을 안아주고 싶다. 아가야 얼마나 춥고 무서웠니?” 애끊는 편지에 세상이 울었다. 마침내 “가만히 있으라”는 선장의 명령을 행동으로 바꿨다.
*엄마의 편지는 단원고 희생자 카페에 올라온 <엄마의 노란 손수건>을 재구성했습니다.

자나 깨나 자식을 염려하는 마음은 부모가 되어서야 안다. 어미수달의 뼈가 피를 흘리며 자식들이 살고 있는 굴속을 찾아갔단다. 이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진실로 믿기는 시절이다. 새끼를 두고 가는 미물의 마음도 이러할 텐데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거나 실종된 안산 단원고 학생만 250명이다. 죽은 수달이 피를 흘리며 굴속의 새끼를 찾아갔듯이 자식을 앞세운 부모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자나 깨나 물속의 아이들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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