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띠 대신 ‘노란리본’ 달고 "아이들아 미안해" 눈물
"세월호 참사, 정부와 기업 짬짜미로 낳은 합작품" 비판

▲ 지난 5월 1일 2000여명의 노동자가 참가한 가운데 124주년 세계노동절을 기념하는 민주노총 집회가 청주실내체육관 앞 광장에서 열렸다. 노동자들은 투쟁 머리띠 대신 노란 리본을 달고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염원했다. 전교조충북지부 박옥주 지부장(사진)은 추모시 낭독을 통해 참석자들의 눈시울을 자극했다.사진/육성준 기자

 
5월 1일 124주년 세계 노동절. 노동자들은 투쟁 조끼 대신 검정 바지에 하얀색 상의를 착용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붉은 머리띠 대신 세월호 실종자의 무사 귀환을 희망하는 노란 리본을 달았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추모하는 울먹임이  투쟁 연설과 구호를 대신했다. 

민주노총 주최로 2000여명이 참여한 노동절 집회가 열린 청주 실내체육관 앞 광장. 이번 노동절 만큼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가 아닌 ‘만국의 노동자가 함께 운 가장 슬픈 노동절이 됐다.

“너희들의 열입곱 해는 단 한 번도 천국인 적이 없었구나. 야자에 보충에 학원에 바위처럼 무거운 삶이 었구나. 3박 4일 학교를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흥분 했었을 아이들아. 선생님 몰래 치약을 짜 넣거나 잠든 친구의 얼굴에 우스운 낙서를 하고 베개 싸움을 하다가 선생님 ‘잠이 안 와요. 삼십분만 더 놀다 자면 안돼요’하며 어여쁜 얼굴로 칭얼거리며 열일곱 봄 추억을 만들었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전교조 충북지부 박옥주 지부장이 추모시를 낭독하는 순간  참석한 노동자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따뜻한 가슴으로 꼭 한 번 안주고 싶었던 사랑하는 아이들아. 껍데기 뿐인 이 나라를 떠나는 아이들아.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박 지부장도 끝내 울음을 참지 못하며 마지막 문구를 낭독했다.

추모와 애도 분위기속에서 박근혜정부에 대한 날선 비판이 쏟아졌다. 김성민 민주노총충북본부장은 “사고의 근본 원인은 폐선처리 대상인 선박의 수명을 10년이나 연장해 준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이다. 전관예우와 짬짜미 속에 해양119가 ‘언딘’으로 바뀐 해양구조 민영화가 빚은 참사라는 점에서 정부의 규제완화와 민영화 정책의 폐기를 요구한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이어 김 본부장은 “세모그룹 유병언 회장으로 상징되는 사용자의 지나친 탐욕이 있다. 이런 ‘탐욕’은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로 이어지는 나쁜 일자리 확대로 이어졌다 최소한의 안전운항에 필요한 기초 교육도 없어 참사를 더욱 키웠다”며 세월호 참사와 비정규직이 양산된 노동시장의 문제와 결부시켰다.

금속노조대전충북지부 조민제 지부장은 “규제완화라는 명목으로 산업현장에서 안전장치가 하나 둘 풀리고 있다. 이로 인해 희생당하는 노동자가 늘어나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그 연장선에 있다”며 “사람 생명 보다 돈을 우선하는 박근혜정부에 대한 퇴진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회를 마친 참석자들은 “아이들아 미안해”라는 문구가 새겨진 노란 종이 피켓을 들고 청주실내체육관 앞 광장에서 상당공원까지 거리행진을 진행했다. 행진중에 구호와 노동가요는 생략됐다. 행진을 마친 노동자들은 도청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 조문을 하는 것으로 124주년 노동절 행사를 마무리 했다.
  
기업은 노동절 집단해고단행 '빈축'
청주시노인병원, 간병사 11명에 문자통보
신화택시, 월급 56만원 택시기사‘표적해고’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자제하며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것으로 노동절 행사를 진행했지만 일부 기업에선 노조 조합원에 대한 표적해고가 발생해 물의를 빚었다.

노동조합 인정 유무와 간병인 근무제도 문제로 갈등을 겪는 청주시노인전문병원(병원장 한수환. 이하 노인병원)은 5월 1일 휴대전화 문자를 통해 간병사 11명을 해고했다. 노조 권옥자 분회장은 “병원이 60세 이상 간병사 11명에게 촉탁계약을 거부했다며 문자로 해고를 통보했다”며 “노동자 생일인 노동절에 문자로 통보하는 경우가 세상에 어디 있냐”며 울분을 토했다.   

청주 택시업체인 신화택시에서도 노조에 대한 보복조치로 의심되는 집단해고가 발생했다. 이 회사 노조 김관식 분회장은 “5월 3일날 노조 분회장은 나를 포함해 조합원 2명을 해고하고 1명은 3개월 정직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취재 결과 신화택시는  “현저하게 업무능력이 떨어지고 대리운전을 겸직했다”는 것을 이유로 이들을 해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들 3명은 각 18년, 10년, 9년 동안 이 회사에 재직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3명은 불법으로 정한 사납금제를 거부하고 월급제로 근무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회사는 이들에게 월급을 적게 주기 위해 하루 4시간만 근무시켰다. 근무 시간이 축소된 이들 노동자들은 55만원에서 60만원 정도에 불과한 월급을 받았다. 생계고에 직면한 이들 3명은 불가피하게 근무시간 외에 대리운전을 하며 회사를 상대로 사납금제 폐지를 요구하며 그동안 투쟁해왔다.    


'8시간 노동제'쟁취의 역사
Since 1890, 노동절의 유래

“그들은 말 잔등 위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사랑하는 말에게 꽃과 샴페인을 먹였다. 조그마한 흑갈색의 강아지에게 다이아몬드가 박힌 1만 5천 달러짜리 목걸이를 달아주고 호화로운 음식을 대접했다. 어떤 연회장에서는 100달러짜리 지폐로 담배를 말아 피웠고, 또 어떤 연회에서는 손님들에게 고급 흑진주를 넣은 조개를 대접했다.”

1800년대 후반 미국은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룬다. 경제발전 덕택으로 기업가와 자본가로 이뤄진 상류사회는 넘쳐나는 경제적 풍요를 감당하지 못했다. ‘알려지지 않은 미국노동운동 이야기’를 저술한 보이어와 모레이스는 당시 미국 상류사회의 세태를  이렇게 묘사했다. 

반면 노동자들의 처지는 매우 비참했다. 하루 12시간 노동은 기본이고 어린 소녀들까지 16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그렇지만 미국 정부와 법원은 노동자들의 처지를 외면했다. 매사추세츠주의 한 판사는 작업 과정에서 다친 노동자는 계약에 서명을 함으로써 일정한 위험을 감수한다는 데 동의한 것이므로 보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판결했다.  또 다른 법원은 노동자가 1년간 계약을 하고 1년이 지나기 전에 일을 그만둔다면 지금까지 일한 것까지 포함한 일체의 임금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판결했다.

노동자들의 분노는 ‘8시간 노동’이라는 구호로 표출했다. 1886년 5월 1일  미국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을 외치며 총파업에 돌입했다. 공장의 기계소리, 망치소리가 멈추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어린 소녀를 포함해 농성중인 6명의 노동자를 총으로 살해했다. 다음날 30만명이 참여한 가운데 시카고 노동자들은  경찰만행을 규탄했다.

헤이마켓 광장에서 집회는 평화롭게 진행됐다. 그런데 집회 도중에 갑자기 폭탄이 터졌다. 미 정부는 이를 빌미로 집회를 주도한 노동운동가 8명을 폭동죄로 체포했다. 이중  5명은 사형, 3명은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이를 계기로 1889년 파리에서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모인 제2인터내셔날 창립대회는 5월 1일을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하여 8시간 노동제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할 것”을 결의했다. 그리고 제2인터내셔널의 선언이 있은 다음해인 1890년 5월 1일을 ‘세계 노동절’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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