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표 객원기자

▲ 이재표 기자
조폭의 세계를 잘 알지는 못한다. 사건기자를 했던 짧은 경험과 영화를 통해 얻은 간접지식이 전부다. 최근에는 조폭영화를 보지도 않는다. 잔인한 칼부림과 생생한 효과음에 치가 떨리기 때문이다. 다만 협객은 세상에 없다고 확신한다. 오직 ‘권력(拳力)’에 따른 힘의 위계만 존재한다. 행동대원들은 방탄용이다. 싸움에서도, 싸움이 끝난 뒤에도 그들은 희생양이다.

세월호 참사 열흘 뒤인 4월 27일, 정홍원 국무총리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청와대는 사태를 수습할 때까지 사표수리를 미뤘다. 그런데 정 총리가 지겠다는 책임의 실체가 수상하다.

그가 밝힌 사퇴의 변은 “진작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자 했으나 우선은 하루빨리 사고수습과 함께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라고 생각했다. 국정운영에 부담을 줄 수 없다는 생각에 사퇴를 결심했다”는 것이었다.

정 총리의 사퇴를 오히려 ‘무책임하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으나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오직 ‘국정운영의 부담’을 덜기 위해 사퇴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이번 참사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대신 “이번 사고로 잘못된 관행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런 것들이 시정돼 다른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말했다.

총리의 권력서열을 ‘일인지하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이라고 표현한다. 결국 그는 대통령에게 향하는 정치적 부담을 차단하기 위해 물러난다는 얘기다. 진짜로 물러날 때 사퇴하면 될 것을 소위 ‘시간차 사퇴’를 미리 발표한 의도부터가 곱게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라고 믿고 싶지만 속내는 알 수 없다.

정 총리보다 먼저 퇴출된 공직자가 있다. 송영철 전 안전행정부 국장이다. 송 전 국장은 4월20일 팽목항 상황본부 사망자 명단 앞에서 동료들과 단체사진을 찍으려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당일 대기발령 처분을 받았고, 이튿날 스스로 사표를 냄으로써 즉각 해임됐다.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일벌백계 차원에서 사표를 즉각 수리해 해임했다”고 밝혔다.

송 전 국장의 행동은 어처구니없는 것이지만 ‘일벌백계’를 운운할만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이 역시 국정운영의 부담을 덜기 위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들여다보면 다 이런 식이다. 교신기록을 비롯해 아직도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의혹에 싸여있는 해경은 틈틈이 구조당시의 동영상을 공개하고 있다. 속옷만 입고 제일 먼저 탈출하는 선장의 모습도 그 중에 하나다. 국민의 공분을 선장과 선원에게 집중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해경도 수사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한다. 해경이 숨기고 있는 것은 없는지, 또 초기대응은 적절했는지 낱낱이 밝혀야한다. 따라서 수사증거물을 필요한 부분만 흘리는 것은 수사의 칼끝을 피해가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사태가 웬만큼 수습되면 국정운영의 부담을 덜어내기 위한 개각이 예상된다. 총리가 물러나는 마당에 장관 몇 명 갈아치우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마침 피해자 가족들 사이에서 컵라면을 먹은 교육부 장관도 있다. 그러나 진실규명과 추상같은 책임추궁이 핵심이다.

최고 책임자도 자유로울 수 없다. 각본에 따른 국면전환용 개각은 위계로 ‘권력(拳力)’을 지키는 조폭의 생리와 다를 게 없다. 그런 ‘권력(權力)’을 받아들이기에는 지금 국민의 분노가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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