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락 청주시 정신건강증신센터장

▲ 최영락 센터장
이 세상에 생을 받은 모든 생명은 다 살고 싶어 한다.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살기를 원한다. 정신의학과 심리학에서는 인간이 죽음에 대한 본능도 갖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럼 이 생명들은 왜 살고 싶은 것일까. 필자는 아직 답을 모른다. 삶 자체가 살고자 하는 처절한 본능이기도 하고, 살아오면서 많은 존재의 이유가 생겼을 테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삶의 이유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인간성을 상실한 채 잔인해지기도 하고 죄책감도 없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필자는 몇 주 전에 여자교도소를 다녀왔다.

가정폭력 재소자들에게 집단정신치료를 진행하였는데 끝날 쯤에 한 여자 재소자가 개인면담을 요구하였다. 교도관 입회하에 작은 방에서 여자는 얘기를 시작하였다.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였고 아기를 가졌다고 한다고 한다. 임신기간에 남자의 폭력이 시작되었고 아기가 태어나면 도저히 함께 살 수 없다고 생각해서 헤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이 너무 힘들고 가난하여 동반자살을 시도했으나 아기만 죽었다고 한다.

여자는 이 비밀스런 고백을 누구에게도 해 본 적이 없으며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줄곧 울었고 필자의 뺨에도 눈물이 흘렀다. 동물 중에 동족을 살육하는 것은 인간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말도 틀린 것 같다. 한 달 전부터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집안에 구피라는 물고기를 키우고 있다. 이 구피에게 넓은 어항과 충분한 먹이를 주었는데도 어미는 제 새끼를 낳는 족족 잡아먹었다. 이 모성의 잔인성을 보며 필자는 분노를 느꼈다. 어항을 치워버리겠다는 엄포는 살아있는 생명을 그럼 죽일 거냐는 아이들의 만류로 그만두었다.

과연 동물세계의 잔인성을 보면서 인간의 비정함이 정당화 되고 위로받을 수 있을까. 인간은 생존을 위한 동물적 본능도 있고, 더 많은 공감능력과 주변까지 돌볼 줄 아는 인간성도 가진 고등동물이다. 어린 아기를 죽인 여자 재소자에게 그래도 인간성 상실보다 생존이 시급한 문제였다고 이해해줄 수 있을까. 아니면 생존과 인간성을 모두 선택을 할 수는 없었냐고 다시금 반문해 봐야 했을까.

우리는 그 동안 엄청난 사건 앞에 넋이 나가고 흥분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든다 하더라도 피해와 가해의 당사자가 아닌 이상 괴리현상을 느껴왔다. 외형과는 다르게 내면에서의 혼란은 고사하고 차디찬 무관심, 구경꾼의 심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측면도 있다. 이는 오래전부터 삶에 능동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거부해 왔던 철저한 관찰자의 시선이고, 개인주의적 도피이며, 절망에 빠지지 않기 위해 자발적으로 동원된 정신적 방어기제였을 것이다.

어쩌면 진도 앞바다에서 벌어진 일은 그 동안 집단적인 혼란과 전개과정 속에서 무관심하고 회피하려 했던 개인적인 내면의 반성까지 요구함으로써 그 파장이 더욱 커 보인다. 거실에 무심코 앉았다가 저절로 떠오른 생각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애써 수선을 떨며 덤벙거리기도 했다.

생명은 진정 아픔이다. 생명을 가진 이상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감히 영웅 같은 죽음은 바라지도 않는다.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사무치게 감사할 일이다. 그래서 진도 앞바다에서 오열했던 사람들과 이를 지켜봤던 사람들 모두 다시 ‘사는 것 이상의 진실은 이 세상에 없다’는 고 박경리 선생의 말씀에 다시 살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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