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석렬 충북대 사회학과 교수

“아직 안타까움과 슬픔, 무엇인지 모를 분노의 감정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이런 글을 어떻게 써야 하나”라는 생각이 펜을 멈추게 한다.

많은 어린 학생들을 포함하여 수백 명의 인명이 희생되었다는 점에서 이 사고가 만든 사회적 충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또한 위급한 상황에 제대로 대처했다면 거의 전원이 생존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번 재난 사고는 더욱 안타까움을 더해준다.

배가 난파해서 전복되는 과정에서 선장이 보여준 무책임성과 우둔함은 우리의 분노를 자아낸다. 이미 위험신호가 감지되었는데도 계속 배를 운행하였고, 구조선이 오기를 기다린다고 승객들이 대피할 시간을 허비하였으며, 오히려 선실에 가두어버려 대부분의 승객들을 죽음에 몰아넣었다.

다음으로는 재난사고가 발생하였을 때 당국의 대처를 지적할 수 있다. 재난 발생 초기의 천금 같은 몇 시간동안 가용한 모든 구조 자원을 동원하는 데 실패하였을 뿐 아니라, 전원 구조라는 잘못된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정부와 민간의 구조 인력이 손을 놓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관료주의 때문에 현장에 접근한 민간 구조 인원을 돌려보내기도 하고, 미군의 구조요청을 거부하기도 하였다. 그러는 동안 선실에 갇힌 사람들은 죽어갔다.

재난관리 전문가가 아니라도 정부의 대처는 실망을 넘어 국가의 기능에 대한 환멸을 자아낼 정도였다.

사실 재난발생 첫날과 다음 날, 정부는 제대로 된 구조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장비의 부족, 조류에 의한 현장접근의 어려움, 조명의 부족 등의 핑계를 댈 뿐이었다. 그런데도 메이저 언론에서는 마치 구조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도를 하였고, 이런 국내언론을 불신한 피해자 가족들은 외신과 국내의 대안 언론에 대해서만 인터뷰에 응하였다.

그러나 이번 재난 사고의 배후에는 더 큰 구조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선사는 일본의 고물 선박을 헐값에 도입해 더 많은 승객과 화물을 실을 수 있도록 설계를 변경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선박의 운행 수명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여준 이명박 정부의 규제완화 조치가 작용하였다. 배가 급회전하면서 화물이 쏠려 전복하게 되었다는 추론이 나오고 있는데, 이 때문에 노후화된 선박의 조향장치가 고장 났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 배를 운행을 감독한 기관은 꼼꼼히 점검해보지도 않고 운행을 허가하였고 화물을 과적하였는지를 제대로 확인하는 절차도 없었다.

사고의 인간적 요인에 대해 생각해보자. 비난의 화살은 온통 선장에 향해 있다. 그러면서 선장이 목숨을 걸고 승객의 안전을 지키지 않은 점을 비난하고 있다.

그렇다면 선장은 왜 선장의 지위에 요구되는, 비상시에 승객을 대피시키는 숙련과 승객을 끝까지 보호하는 도덕성을 갖추지 못했을까? 도덕성과 숙련의 형성은 윤리적 요청에 의해 저절로 형성되지 않는다. 자기 직업에 대한 긍지와 꾸준한 교육과정과 끊임없는 자기 암시에 의해 이런 도덕성과 숙련은 길러질 것이다.

선장은 일반 선원에서 출발해 선장업무에 필요한 공식적인 교육과 훈련과정을 밟지 못하였다. 그리고 저임금 계약직으로 이 회사, 저 회사를 옮겨 다니며 배를 운전하였다. 이런 이들에게 타이타닉의 선장이 가졌던 도덕성과 숙련을 요구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는 국가와 민간 부분에서의 신뢰가 동시에 무너지고 있다. 사람들은 한국은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나라에서 수명이 다한 핵발전소를 연장 가동하는 것에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신뢰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길은 자본의 수익성과 몰인격적 관료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인간의 가치가 우선시되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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