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베일런트의 진실한 연구보고서 <행복의 조건>

이헌석
서원대 법경찰학과 교수

“행복하십니까?” 난데없이 누군가 묻는다면 무엇이라 답할까? 지난해 우리 사회를 강타했던 “안녕들 하십니까?”에 비해 조금은 덜 불편한 질문이지만, 선 듯 답하기가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그도 그럴 것이, ‘경쟁’, ‘생존’ 그리고 ‘구조조정’이라는 섬뜩한 구호들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남겠다고 발버둥치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행복”은 먼 나라이야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판에 자칫 “행복”이나 “희망”을 떠들다가는 뺨 맞기 십상이다.

이렇듯 녹녹하지 않은 삶을 헤쳐가다 보니, 어느덧 내 나이도 50이 훌쩍 넘었고, 벌써 노후를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또 걱정이다. 나이 먹어서는 돈이 최고라는데, 수중에 모아 논 돈도 없으니 말이다.

이렇게 걱정을 터지게 하던 순간에 우연히 딸아이의 책상 위에 누워있는 「행복의 조건」이라는 책에 눈길이 꽂혔다. 이 책은 ‘하버드 법대 졸업생 집단’, ‘이너시티 집단(도시빈민 남성들)’, ‘터먼 여성집단(IQ 150이상의 천재 소녀들)’을 72년간 추적 조사한 연구보고서이다. 그렇지만 청소년들도 어렵지 않을 정도로 쉽게 쓰여 있다.

▲ 제목: 행복의 조건 지은이: 조지 베일런트 옮긴이: 이덕남 출판사: 프런티어
이 책은 노화를 신체적인 쇠퇴의 진행 과정이 아니라 삶의 성장 과정으로 보고 있으며, 생명이 유지되는 한 노년에도 계속해서 성장과 쇠퇴가 반복된다고 한다. 또한 노년의 행복은 재력이나 학력, 아이큐 등과 같은 선천적인 조건들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얼마나 건강한 삶을 살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행복하고 건강한 삶에도 법칙이 있을까? 이 책은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이며, 행복은 사랑’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그리고 행복한 노년을 만들어 주는 7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금연’, ‘적응적 방어기제(생각을 긍정적으로 하는 능력)’, ‘알코올 중독 경험 없음’, ‘알맞은 체중’, ‘안정적인 결혼생활’, ‘적당한 운동’ 그리고 마지막으로 ‘끊임없는 학습’이 그것이다. 결국 행복은 우리들이 조금만 신경을 쓰면 누구나 행할 수 있는 것들에 의해 만들어 지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다보면 ‘행복은 선택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행복하다’, ‘내 행복은 내가 좌우할 수 있다’는 행복의 목표와 가능성에 희망을 갖게 된다.

막연했던 가설 과학적·객관적으로 입증

다만, 결론이 조금은 식상한 것이라서 기발한 행복의 조건을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다소 지루한 느낌을 주는 것이 약점이다. 솔직히 이런 뻔한 이야기를 하려고 70여년이나 연구했을까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주제를 70여년에 걸쳐 연구할 수 있는 연구 환경이 부러운 것은 차지하더라도, 수 십 년에 걸친 추적 관찰을 통해 그 동안 막연히 알고 있던 내용(가설)을 과학적·객관적으로 입증해냈다는 것 자체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이 행복한 노년생활을 이끌어주는 완벽한 답변서는 아니겠지만 최소한 그 동안 부족했던 성인발달 연구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럼에도 주의할 것은, 이 책은 수 십 년에 걸친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한 연구결과라고 포장되어 있지만, 저자인 베일런트의 주관적 가치관이 경도되어 있어 독자들이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있음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예를 들면, 장수(長壽)를 행복한 삶의 기본전제로 보았기 때문에, 하버드를 졸업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았지만 50대에 횡사한 사람은 0점을 부여했다. 반드시 80세 이상을 살아야 행복한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사례자들의 집안 분위기와 표정, 사회적 유대관계, 가족과의 관계에 대해서 객관적이기 보다는 작자의 주관적 평가가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종교와 문화적 환경이 다른 사람들은 쉽게 동의하기 힘든 부분도 있다.

그래도 어쨌거나 이 연구를 통해 노년의 행복은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은 객관적으로 입증된 사실이 되었다. 따라서 노년을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행복의 조건 7가지를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현명하게 살고 싶다면 실패한 사람들과 성공한 사람들의 차이를 알아야 하고, 먼저 살아본 사람들의 경험에서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는데 의문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공적으로 행복한 삶을 사는 노인들이 알려주는 인생의 비법은 성공적 노후를 준비하는 우리들에게 한층 의미 있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술·담배를 못 끊고, 마음 터놓을 친구도 없는 나 같은 인간은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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