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재표 그림: 옆꾸리


“그렇다면 짐을 위해 안민가(安民歌)를 지어보라.”
충담은 곧바로 왕명을 받들어 노래를 지어 바쳤다. 왕이 아름답게 여겨 왕사(王師)로 봉했으나, 그는 삼가 재배하며 간곡히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안민가는 다음과 같다.

임금은 아버지요
신하는 사랑을 주는 어머니라.
백성을 어리석은 아이로 여기면
모든 백성들이 사랑을 알리라.

꾸물거리며 사는 중생
이들을 먹여 다스려라.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가랴’라고 하면
이 나라가 보전될 줄 알리라.

아아,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하면
나라는 태평을 지속하리.

백성을 편하게 하는 노래, 안민가다. 신라 경덕왕 대의 고승 충담이 지었다. 임금과 신하가 백성을 자녀로 여겨 보살피면 백성이 그 사랑을 느낄 것이다. 또 약삭빠르지 못한 사람들까지 잘 거두면 나라가 평안하리란 내용이다.
그러나 안민은 이상일까?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짓누르는 ‘안민(按民)’도 있다. “시원하지”하며 틈만 나면 국민을 주무르는데, 마사지가 너무 강해서 국민들은 비명을 지른다.

통치자와 관료는
어른인 척 하며 군림하는 이라.
국민을 어리석은 아이로 여기고
‘너희들이 무엇을 알겠냐?’한다.

꾸물거리며 사는 중생은
알아서 먹고 살아가라.
‘이 땅을 버리고 어디든 가리라’하면
‘나라가 보장할 줄 알았냐?’한다.

아악, 인간답게, 사람답게 살자는데
그들은 세월아, 네월아 하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