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혜정 충청북도 여성정책관

▲ 변혜정 충청북도 여성정책관
월요일마다 오송역에서 내려 도청까지 콜택시를 타고 출근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택시아저씨로부터 그간 몰랐던 충북의 정치, 경제, 부터 충북의 야사, 스캔들(?)까지 ‘충북 살아가기’에 대한 온갖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늘 만난 아저씨는 자신이 기르는 소들이 얼마나 영리한지 뜬금없는 자랑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러다가 소들도 여자를 무시한다며 소를 이기는 방법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 아저씨가 들려준 이야기의 요지는, 소들이 외양간에 여물을 주기 위해 들어간 힘없는 여자들을 꼬리로 치거나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동물들도 힘없는 여성들을 무시하니 강해져야 한다며 강한 사람의 강한 체벌이 이 사회를 다스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필자가 약한 남자도 있다고 하니 마지못해 아저씨는 소들이 약한 남자도 무시한다고 인정했다. 그럼에도 아저씨는 소들까지 무시하는 여자란 존재는 약한 존재이니 이 사회를 다스릴 수 없다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정말 소들이 여자들을 무시하는지, 필자는 과학적으로 아는 바가 없다. 그러나 아저씨가 설명하듯이 정말 여자들은 약한 존재일까? 약한 남자가 있는 것처럼 약한 여자도 있을지언정 왜 여자들을 약한 존재로 규정하는 것일까? 여성이 약하다는 그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아저씨는 끝내 말하지 못했다. 그냥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약하다는 그 주장만 반복했다. 맹목적으로 여자는 약하다고 믿고 싶은 모양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자를 약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람들은 여자를 약자로 취급하게 된다. 때로는 괜찮은 남자가 되기 위해 중세시대의 기사들처럼 여자를 보호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약한 여성은 물론이고 약하지 않은 여성들도 여러모로 어떻게 처신할지를 배운다.

‘어릴 때부터 선머슴 같다고 제발 얌전하라고 잔소리를 들었다’는 50대 영희에서부터 ‘원래 약한데 약하게 살아가는 것이 이익이라는 것을 알아 굳이 강해질 필요가 없었다’는 30대 혜진까지, 언제나 여성들은 세상의 주문대로 약하게 보호받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편하다.

갈수록 여성들은 있는 그대로 자신을 표현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언제나 세상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야 하는 여성들은 남성들과 살아가는 조직사회에서 주어지는 역할 이상을 하기 어렵다. 아니 할 필요가 없다. 그냥 귀여운 여동생처럼 코스프레(역할연기)를 하면 된다.

반면 집에서는 딸이나 엄마로서 주어진 역할을 해야 한다. ‘엄마 같지 않는 엄마’들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가? 한국 여성의 경력단절 원인이 결혼과 육아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간혹 여동생이나 엄마 같지 않는 여자들이 있다. 소도 무시하는 그런 약한 여자가 아니라 소위 ‘튀는 여자들’이 있다. 주장이 강한 여성들, 적극적으로 일을 찾아서 하는 여성들, 더 나아가 규범을 어기면서까지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는 여성들이 주변에 있다.

그런데 그 여성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불온하다. 남자들은 물론이고 여자들 스스로도 그 비난이 두려워서 적절하게 처신하며 ‘튀는 여자들’을 끌어내린다. 그러다보니 여성들은 세상이 정한 규범과 역할 내에서 금 그어 놓은 반경을 절대로 넘지 않고 그 안에서 착한 딸로, 튀지 않는 여자로 살아가고 있다.

여성정책을 담당하는 필자 역시 조직이라는 반경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벗어나기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때로는 사실이기도 하고 때로는 어쩔 수 없어서, 오늘도 필자는 살살이처럼, 때로는 여우처럼 살아야 함을 배운다.

소녀들이여, 야망을 가져라(Girls, Be ambitious!) 라는 주장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오늘도 다시 느낀 하루였다. 그러나 소녀들이 비난받지 않고 격려 받으며 야망을 갖기를 오늘도 동시에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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