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운동가 이상정 씨 ‘기초의회에서 농민해방농사’ 할 것

2006년 11월 청주실내체육관 앞 광장은 1만 여명의 인파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머리에 ‘한미FTA 반대’라고 적힌 머리띠를 두른 농민들이 광장을 가득 메웠고 노동자들도 함께 했다. 이때 모인 1만여명의 인파는 지금까지도 충북지역 사상 최고의 인파가 모인 거리 집회로 평가된다. 87년 민주화 시위 때도 이명박 정부 1년차 촛불 시위 인파도 이에 미치지 못했다.

이상정 씨는 2006년 당시 전국농민회충북도연맹 사무처장을 맡고 있었다. 그는 한미 FTA반대 시위를 조직하기 위해 몇 달을 노력했다. 각 마을을 순회하며 한미FTA로 인해 발생할 농업과 농민의 피해를 알렸다. 이런 노력으로 농민만 7000명 이상이 참여했다.

하지만 당시 이상정씨는 이 집회 이틀만에 바로 수배자가 됐다. 당시 참여정부는 집회 참가자 일부가 집시법을 위반한 것을 이유로 집회주도자 전원에게 출석요구서를 발부했다. 이어 불응한 지도부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한다. 이 모든 것이 불과 일주일만에 이뤄졌다. 결국 이상정 씨는 구속까지 됐다.

이 씨는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나왔다. 하지만 대학시절 사회현실에 눈뜬 그는 1989년 졸업과 동시에 고향인 음성군 소이면에 내려와 농사를 지었다. 이유는 어려움에 빠진 농업과 농민을 위한 농민운동에 하기 위해서였다.

이 씨의 삶은 농민운동과 농민회와 함께 한 삶으로 표현할 수 있다. 1990년에 창립된 음성군 농민회 초대 사무국장을 시작으로 26년을 농민회와 함께 했다. 그는 현재 음성군 농민회장을 맡고 있다. 이외에도 음성농협 감사, 음성군 농민단체협의회 부회장등 맡고 있는 직책만 10여가지가 넘는다.

이상정 씨는 6월에 시작되는 지방자치선거에서 음성군 기초의원으로 출마할 예정이다. 거리의 농민운동가에서 의정활동을 통해 농민 삶의 질을 개선해보기 위해 출마를 선언했다. 지난 13일에는 음성군 소이면 노인회가 주도한 면 단일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도 마쳤다. 압도적 지지로 경선을 통과한 그는 무소속으로 출마한다. 아스팔트 농사꾼에서 의정활동가를 선언한 이상정씨.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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