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언저리에서 배회하는 나, TV조선을 열렬히 시청하고 있는 너

김영범
시인

10년 만에 아내와 극장을 갔다. 참 오랜만이다. 연애가 짧았던 우리는 남들처럼 만나서 밥 먹고 극장 가고 커피숍 가고 하는 일상적인 데이트를 하지 못했다. 그러니 10년 만의 극장 나들이도 남들 보기에는 너무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결혼하고 애 키우며 사는 사람들은 이해할 것이다.

아마도 <변호인>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극장 나들이는 더 미뤄졌을 것이다. 몇 해 전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을 TV 중계로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 기억이 난다. 아내도 나도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과 콧물을 어쩌지 못했던 그 날이 떠오른다. 영화가 고 노무현 대통령의 이야기를 토대로 하고 있고 전국의 관객을 극장으로 끌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10년 만에 극장으로 가는 길이 설렜다.

▲ 변호인 The Attorney , 2013 한국 | 드라마 | 2013.12.18 15세이상관람가 | 127분 감독 양우석 출연 송강호, 김영애, 오달수, 곽도원
영화는 지역, 학벌에 밀려 검사를 그만두고 돈 잘 버는 세무 업무 전문 변호사를 개업하여 승승장구하는 송우석(송강호)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영화 전반부는 유희적 요소로 가득하다. 송우석의 선택은 일명 대박을 냈고 속물 송우석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국밥집 아줌마 최순애(김영애) 그녀의 아들 진우(시완)와의 필연적 만남이 전개되고 영화는 차츰 웃음기를 빼기 시작한다.

영화의 내용 어디까지가 실재를 담보하고 있는가? 영화 초반 송우석이란 인물은 역사의식도 정치의식도 사회의식도 없는 그저 돈 버는 데 혈안이 된 평범한 너무 평범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런 그가 영화 중반을 넘어서면서 진우의 변호를 위해 보장된 미래를 포기하는 장면에서 다소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다.

영화의 중반 이후는 ‘부림사건’에 관한 이야기다. 이 사건은 ‘1981년 9월 부산 지역의 양서협동조합을 통하여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교사·회사원 등을 영장 없이 체포한 뒤, 짧게는 20일에서 길게는 63일 동안 불법으로 감금하며 구타·및·고문을 가하고 독서모임이나 몇몇이 다방에 앉아서 나눈 이야기들은 정부 전복을 꾀하는 반국가단체의 ‘이적 표현물 학습’과 ‘반국가단체 찬양 및 고무’로 몰아붙인 사건’이다.

30여 년이 지난 사건이지만 아직도 유효하고 현재 진행형인 사건이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10년밖에 권력을 놓치지 않은 기득권은 그 권력을 지키기 위해 여전히 ‘빨갱이 몰이’에 혈안이 돼 있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소중하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가혹한 장면을 너무 많이 보아 왔다. 지금도 유행하고 있는 ‘형님 영화’는 그 수위가 점점 세지고 있다. <해바라기>, <비열한 거리>, <아저씨> 같은 영화처럼 잘생긴 배우의 잔인한 폭력과 살인 장면이 아무런 필터 없이 멋이게 보이는 세상이다. 그러니 <변호인>에서 학생들이 가혹한 구타와 고문을 당하는 장면이 어떤 이미지로 관객에게 보일까?

비교적 젊은 사람들은 이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아무런 죄 없이 끌려와 고문당하는 어린 학생들이 불쌍했을 것이다. 나는 어디쯤에서 눈물을 흘려야 할까? 난 이미 감동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데.

송우석이 권력과 맞서 싸우는 동안 너무도 자명한 진리를 역설하는 동안 영화는 당연히 사회적, 정치적 모순을 보여준다. 권력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력과 그 권력이 당연하고 전부라고 믿고 있는 차동영(곽도원)의 등장은 영화의 또 다른 흥미를 보여준다. 차동영은 권력의 개다. 아주 순종적이고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명견이다. 그런 개한테 물리면 끝이다. 배우 곽도원의 명연기는 이 영화의 또 하나의 보석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으로 전국이 촛불을 들어 올렸을 때 이런 노래를 불렀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민주공화국의 이 자명한 권리를 우리는 자본의 신 앞에 무릎 꿇고 자본의 신 위에 군림하는 지배 권력의 거짓 논리에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홀연 단신 권력에 맞서 싸우는 송우석의 대사다. 송우석이 법정에서 죄 없는 학생들을 변호하는 장면은 이 시대의 당연한 정의와 진리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왜 우리가 정의와 진리를 지켜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어쩌면 많은 사람은 영화 속의 이야기로 치부할지 모른다. 영화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칼로 찌르고 죽이는 장면처럼 극장을 나오면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 돼버릴지도 모른다.

우리는 부정한 권력에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 그러므로 영화 속에서도 송우석은 이길 수 없다. 당연한 결론으로 영화도 흘러가고 있었다. 난 언제 울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드디어 마지막 변론을 위해 송우석이 법정에 섰을 때, 판사가 변호인 명단을 불렀을 때 영화 <변호인>의 주인공이 송우석이 아니었다는 걸 알았을 때 아꼈던 눈물은 내 뺨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쉽다. 깃발을 세우고 촛불을 들어도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다. 영화 속에서도 권력을 넘어서지 못했다. 영화 <한반도>에서처럼 정의가 승리하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의 반응도 제각각이다. 남녀의 차이가 있고, 세대의 차이가 있고, 이념의 차이가 있고, 신분의 차이가 있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 자본의 언저리에서 배회하는 나, TV조선을 열렬히 시청하고 있는 너는 공존 불가능한 궤도를 돌고 있다.

영화는 끝이 났다. 여전히 누군가는 호의호식하며 잘 살고 누군가는 그럭저럭 산다. 세상도 그럭저럭 굴러간다. 감독 양우석, 배우 송강호, 곽도원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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