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7번 살처분 작업에 동원된 공무원도, 주먹구구식 방제 언제까지
선진국은 전문 방제요원들 투입···진천·음성 특별재난지역 선포했어야

▲ 현재 AI와 전쟁을 벌이는 측은 지자체이다. 국가가 아닌 지자체가 책임지고 사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진천·음성군은 공무원·군인을 동원해 각각 오리·닭 80여만 마리를 살처분했다.

최근 충북 진천·음성은 조류인플루엔자(AI)와의 전쟁을 벌였다. 이로 인해 수십만 마리의 오리·닭이 죽었다. 그러나 사태가 종결된 건 아니다. 양 시·군에는 지금도 간혹 의심신고가 들어와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고 있다. 진천군은 지난 1월 28일~2월 28일 오리·닭 88만여 마리를 살처분했다. 그리고 음성군은 지난 2월 3일~2월 26일 이보다 약간 적은 86만여 마리를 살처분했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났다. 이재은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안전의식을 보면 그 나라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재난이 발생하면 미국은 우주복같은 방제복에 산소마스크를 쓴 방제요원들이 들어가지만 우리나라는 일반인들이 흉내만 낸 방제복에 마스크를 쓰고 한다. 중국은 청바지 입은 일반인들이 윗 옷을 벗고 작업을 한다”면서 “이번 오리·닭 살처분도 일반인이 해서는 안되는 작업이었다. 전문 방제요원들이 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진천·음성군에서 AI 오리·닭 살처분을 주도한 사람들은 해당 지자체 공무원들과 군인이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진천군지부·진천군이장단연합회 등 진천군내 시민사회단체는 범군민대책위를 구성하고 지난 2월 10일 AI 발생지역 특별재난지역 선포 및 살처분 중단 건의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농림수산식품부는 AI 확진이 이뤄지면 그 지역으로부터 반경 3km 이내의 모든 닭과 오리를 살처분하는 구시대적 방역정책을 반복하고 있다. 한 사람이 감기에 걸렸다고 주변 건강한 사람까지 모두 죽이는 것과 같다. 그러면서 농림수산식품부는 살처분 권한이 자치단체장에 있다며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선택적 살처분에 대한 실질적 권한을 자치단체로부터 이양해야 하고 확실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발생지역 특별재난지역 선포, 가축전염병예방법 및 시행령에 규정한 각종 보상금·방역비용 부담 규정 개정해 전액 국가지원, 살처분 중단하고 효율적인 방역대책 수립, AI의 정확한 원인 규명, 오리·닭 농가 실질적인 보상책 강구를 요구했다. 이들은 또 살처분 현장에 동원된 근무자들의 안전과 충분한 보상을 제공하라는 요구도 잊지 않았다.

“공무원들은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즉각 대처해야 한다. 그래서 AI로 인한 살처분 현장에 들어가 일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재난관리를 이런 식으로 하는 건 문제가 있다. 모든 대처는 지자체에서 해야 하고, 공무원들이 되풀이되는 오리·닭 살처분을 맡는 주먹구구식 재난관리를 언제까지 해야할지 난감하다.” 꼬박 1개월동안 이어진 오리·닭 살처분 현장에서 일했던 충북 진천군 공무원 모 씨의 말이다. 1개월 내내 이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진천군 공무원들은 자주 살처분 현장에 투입됐다.

지자체에 떠넘긴 AI 살처분 작업
가축전염병예방법에 의하면 AI에 걸린 가축과 농장주 이동제한조치는 농림부장관, 살처분 결정은 자치단체장이 하도록 돼있다. 진천군은 AI 발생지역에서 반경 3km 이내인 위험지역 오리·닭까지 생매장했다. 음성군은 이 보다 더 넓게 반경 10km 이내인 경계지역 오리·닭을 모조리 살처분했다. 이 결정도 지자체장이 내렸다. 지자체장에게 많은 권한이 있는 것 같지만, 이는 곧 AI같은 재난이 발생해도 지자체에서 알아서 처리하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다보니 해당 지자체는 공무원 인력을 동원해 살처분을 강행할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손길이라면 군인 정도. 진천군에서는 지난 1개월간 공무원과 군인 등 5189명이 현장에 투입됐다. 음성군은 공무원·군인과 일부 민간인을 합쳐 5539명이 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충북도도 진천·음성에 각 240명의 공무원을 지원했다. 진천군에서는 살처분 현장에 투입됐던 사회복지직 공무원이 뇌출혈로 쓰러지는 안타까운 일도 발생했다.

이런 현장에 투입되는 공무원들에게 하는 것이라고는 간단한 교육과 조치밖에 없다. 공무원 A씨는 “보건소 직원으로부터 간단한 교육을 받은 뒤 신종플루 예방약 타미플루를 먹었다. 방제복과 마스크, 고글을 쓰고 장화를 신은 뒤 살처분 현장에 들어가 하루종일 푸대에 오리·닭 등을 잡아넣는 일을 했다. 그런데 고글은 불편해 쓰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다. 작업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뤄지고, 끝나고 나서 단체로 목욕을 했다”고 말했다.

충북도 공무원은 도와주는 차원이라 한 번 다녀온 뒤 다음 날 하루 휴가를 얻었다. 하지만 진천·음성군 공무원들은 당사자들이라 휴가조차 없었다. 휴가를 줄 만큼 인력에 여유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천군 공무원 중에서는 최대 7번, 음성군 공무원은 최대 5번까지 살처분 작업에 투입된 사람이 있다는 게 해당 지자체 설명이다. 정연철 진천군 부군수는 “휴가 한 번 주지 못하고 일을 시켜 직원들에게 무척 미안했다. 직원들 다독이며 어렵게 88만여 마리를 살처분했다. 더 이상 의심신고가 들어오지 않길 바라고 있다. 앞으로 직원들에게 휴가를 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조병옥 음성군 부군수도 “살처분 현장에 나가랴, 본 업무 처리하랴 바쁘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직원들에게 정말 미안했다”고 말했다.

‘안전’ 강조하는 국가는 뭐하고?
작업후 이들이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호소하면 지자체는 재난심리지원센터·정신건강증진센터와 연계하고 외상후 스트레스증후군 상담치료를 한다. 3명이 심리치료를 받았으나 큰 이상은 없었다고 담당자는 전했다. 현재 진천군에서는 살처분 현장에 투입됐다 쓰러진 공무원 돕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진천군에서는 ‘공상’처리를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후약방문’ 성격이 짙다. 애초부터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했어야 했다. 국가는 AI 발생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예산과 인력지원 등을 정부 책임하에 했어야 하는 것이다.

이재은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의 설명을 들으면 더 분명해진다. “국가에서 방역대책을 수립하고 전문요원을 양성해야 한다. 재난현장에는 이들을 투입해야 한다. 그리고 재난 후에는 가축 사체 등 각종 쓰레기가 어마어마하게 발생한다. 선진국에는 이런 것만 전문으로 처리하는 기업이 있다. 우리나라는 이런 것을 보이지 않는 곳에 몰래 버려 호흡기 감염 등을 유발시키고 있다. 우리도 이런 기업이 있어야 한다.” 진천·음성군에서는 이번에 예산 출혈이 커 현재 국비 받아내는 게 관건이다. 때문에 전문 방제요원 투입 요구는 얘기도 못 꺼내고 있다. 진천군은 이번에 살처분 농가 보상금을 제외하고 13억여원, 음성군은 15억여원을 썼다. 이 돈 받아내는 것도 쉽지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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