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복 청주노동인권센터 노무사

▲ 조광복 노무사
나이 50대 중반을 넘긴 일용직 안 씨는 최근 1년여 동안 세 번의 사건이 있어 청주노동인권센터를 찾아 왔다.

2012년 9월이었다. 청주에 있는 모 백화점에서 청소 일을 하다 터무니없이 해고를 당했다. 평소 바른말을 잘하기 때문이었다. 안 씨를 해고한 업체는 용역업체다. 근로계약서를 보니 6개월 계약기간에다 수습기간은 3개월이고 수습기간 중에는 언제라도 해고할 수 있도록 정해두었다. 안 씨는 용역업체 소속에다 계약직으로 고용된 이중의 비정규직인 셈이었다. ‘해고무효확인 및 임금청구 소송’을 하도록 안내하고 소장을 작성해드렸다.

그리고 몇 달 쯤 지난 후 다시 안 씨가 찾아왔다. 뷰티박람회 때 40여 일 동안 청소 일을 했는데 시간외수당을 제대로 못 받았다는 것이다. 용역회사로부터 재용역을 받은 업체가 안 씨를 포함해 60여명을 일용직으로 고용해 놓고는 충북도에서 지급하는 인건비 중 시간외수당을 떼어먹으려는 심산이었다. 바른 말 잘하는 안 씨가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호소를 한 덕에 시간외수당을 받을 수 있었다.

잊을만하니 또 찾아왔는데 이번엔 공예비엔날레다. 또 용역업체이고 또 임시`일용직이고 또 시간외수당을 떼어먹혔다. 포기하지 않고 수십 명의 수당을 기어코 받아내는 안 씨도 대단하지만 가는 곳마다 용역업체에다 임시직·일용직이고 잘리거나 임금 떼어먹히기 일쑤인 비정규직의 굴레가 참 질기기도 하다.

뜬금없지만 소치올림픽 얘기를 하겠다. 김연아도 김연아지만 내게 최고 관심거리는 단연 안현수, 빅토르 안이었다. 그는 ‘승리자’라는 이름답게 압도적인 기량으로 금메달을 휩쓸었다. 경쟁자들의 뒤를 따르다 한 순간 몸을 확 비틀자 길이 쓰윽 열리고 그 사이를 빅토르 안은 미끄러지듯이 파고들어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스케이트를 탈 줄 모르는 내가 보아도 멋진 장면이다.

거기에다 ‘안’에게는 스토리가 있지 않은가? 파벌에 휘둘리고 부상에 신음하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절치부심하여 다시 세계를 재패하다니. 절세가인까지 동반하고서 말이다. 어릴 적 밤새 무협만화에 빠져들게 했던, 고독한 무림고수의 사연과 곡절 그리고 해피엔딩까지 어찌 그리 흡사할까? 나는 아마도 ‘빅토르 안’한테서 대리만족이랄까 쾌감 같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빅토르’가 아니다. 내가 인연을 맺은 수많은 일용직 안 씨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빅토르 안’이 될 수 없는, 많은 일용직 안 씨들은 함부로 잘리기 일쑤고 용역업체 소속에다 임시직, 일용직이다. 시간외수당도 참 잘 떼어먹힌다. 그들은 좀처럼 비정규직의 돌고 도는 쳇바퀴를 벗어나지 못한다.

빅토르 안의 성공스토리에 딴지 걸 의도는 전혀 없다. 단지 ‘안’의 성공스토리에 일용직 안 씨들의 고단한 일상사를 살짝 끼워 넣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기어코 시간외수당을 받아낸 일용직 안 씨도 한껏 세워주고 싶다. 빅토르 안이 시련을 딛고 얼음 위에 우뚝 선 것처럼 우리의 일용직 안 씨 역시 해고를 당해도, 시간외수당을 떼어먹혀도 줄기차게 싸워서 권리를 찾았지 않느냐고. 장하다! 빅토르 안, 힘내시라! 일용직 안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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