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값 부조금 수준이지만 돈봉투 속은 아무도 몰라
출마 포기하면 ‘먹튀’ 논란… 일부 정치인 “밑졌다”

선거의 해는 ‘출판문화의 해’인가? 기성 정치인이나 출마예정자를 가릴 것 없이 자신의 책을 쏟아내고 있다. 현행 선거법 아래에서 출판기념회는 합법적으로 보장된 선전 활동의 수단을 넘어서 정치자금을 거둬들이는 창구로 활용되는 분위기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정가제’로 파는 것과 달리 출판기념회의 경우 대개 봉투가 오가기 때문이다. 은밀한 봉투 속은 돈을 넣은 사람과 열어본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따라서 정치자금법이 정한 후원금의 허용범위는 의미를 상실했다. 사실 선관위에 세입세출에 결산보고조차 하지 않으니 따지고들 근거도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은 합법이다.

▲ 출판기념회를 잘하면 후원금도 긁어모으고 세를 과시하며, 선전효과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부정한 후원의 우려도 있고, 결과 역시 부익부 빈익빈이다. 사진은 이번 지방선거 출마예정자의 출판기념회. / 육성준 기자 eyeman@cbinews.co.kr

과거에는 대개 국회의원이나 도지사 후보들이 자신들의 책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는 교육감 후보나 기초단체장 후보들은 물론이고 광역의원 후보, 기초의원 후보들까지 책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갖는 추세다.

정치자금법은 정치후원금을 양성화하자는 측면에서 마련됐다. 후원회를 통해 후원금을 모을 수 있는 대상은 대통령 후보 및 예비후보, 국회의원 후보 및 예비후보, 광역 및 기초단체장 후보자 등이다. 기업 등 법인은 후원금을 낼 수 없으며 1년 동안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액을 후원한 사람은 공개대상이다.

기업의 임직원들이 ‘회사원’ 신분으로 후원금을 내거나 공개대상에 해당되지 않도록 돈을 쪼개 차명으로 후원하는 것은 이미 알려진 비밀이다. 그러나 굳이 후원회를 통할 것 없이 출판기념회를 활용하면 얼마든지 목돈을 건넬 수 있다. 실제로 지역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졌던 A지방의원은 “서울에서 정치를 하는 지인으로부터 ‘1000만원 짜리(봉투)가 몇 개 들어왔냐?’는 질문을 받고 황당했다. 지방의원의 현실과는 거리가 먼 얘기”라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출판기념회를 가졌던 B의원(국회의원)실 관계자는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는 작가나 개인이 책을 내고 그에 따른 행사를 갖는 일상적인 행위와 똑같이 간주되기 때문에 어떠한 제약도 없다. 관례적으로 그렇게 해왔다. 대부분 책값보다 많은 돈을 봉투에 넣지만 대개는 부조금 수준이다. 만약 정치적인 보험 이상을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더 은밀한 방법을 택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거물정치인 ‘억억(億億)’은 기본

이 관계자는 또 “(우리 의원은)몇 년 전부터 기획해서 책을 썼고 양장본으로 만들었다. 출판비용과 행사경비를 제하고 대략 1억원 정도가 남았다. 생계형 정치인에게 출판기념회가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부끄럽지 않은 책을 냈고, 책은 오랫동안 소장된다는 장점이 있다”고 귀띔했다.

책을 만들기 나름이지만 단행본의 제작비용은 대개 권당 3000~4000원 정도다. 출판기념회를 통해 책을 유통할 경우 책값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통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출판기념회에서는 누구도 정가로 책을 사지 않는다는 것이다.

출판기념회를 가졌던 정치인 A?B?C의원에게 ‘봉투 속에 대개 얼마 정도의 돈이 들어있냐?’고 노골적으로 물어보았다. 이들의 대답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통상의 경우 경조사 수준이다. 3~5만원 정도라고 보면 된다. 각별한 관계라면 10만원 이상을 넣는 경우도 있다. 책값대로 돈을 거슬러 달라는 경우도 간혹 있고, 10만원을 냈으니 책을 몇 권 더 달라는 경우도 있지만 극히 드물다”는 것.

그렇다고 모든 출판기념회가 다 돈이 되는 것은 아니다. 현직과 정치신인, 유명과 무명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출판기념회에 최대한 많은 인원을 동원하는 것은 ‘세 과시’와 ‘후원금 확보’, ‘출마 홍보’라는 세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지만 정치신인은 홍보효과만 건져도 다행인 셈이다. 이에 반해 현역 정치인들은 알아서도 찾아오고, 심지어는 조직을 동원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살 정도다.

후보가 난립하고 있는 교육감 선거의 경우 예비후보들의 교육철학을 소개하는 출판기념회도 경쟁적으로 열리는 상황이다. D예비후보는 “후보 사이에 교통정리가 이뤄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출판기념회를 여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솔직히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돈을 쓴 행사였을 뿐”이라고 털어놓았다.

역시 출판기념회를 가진 E지방의원은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은 출판기념회에서도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후원금을 모으기 위한 행사였다기보다 지방의회의 수준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한 시도로 봐 달라”고 주문했다.

출판기념회를 가진지 불과 1주일 만에 출마포기를 선언한 E(교육감) 예비후보는 이른바 ‘먹튀’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선거에 도움을 주기 위해 책을 샀는데 출마하지 않는 것은 사기극”이라는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선거구도가 가닥을 잡아가면서 출판기념회만 갖고 출마하지 않는 예비후보들은 예외 없이 이같은 비난의 화살을 피해가기 어려울 전망이다. 심지어 대대적인 출판기념회를 가졌던 한 현직의 경우 ‘수억원을 벌었을 것’이라는 곱지 않는 눈총을 받고 있다. 설사 전세가 불리해도 ‘먹튀’라는 비난 때문에 출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뒷말까지 나오는 이유다.

위험한 출판기념회, 자칫하면 선 넘는다
공짜로 나눠주면 선거법 위반… 지지발언도 안 돼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는 그 주체를 정치인이기 전에 한 명의 작가로 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선거일로부터 90일 전까지다. 따라서 이번 지방선거의 경우 3월6일부터는 후보자 또는 후보자가 되려는 자는 출판기념회를 열 수 없다.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선거구민에게 무료 또는 싼 값으로 저서를 제공하거나 음식물을 제공하는 것은 선거법에 위반된다. 다만 참석자에게 1000원 이하의 차·커피 등 음료(주류제외)를 제공하는 것은 가능하다.

선관위는 통상적으로 대선의 경우 특수성을 고려해 중앙과 지방 등에서 몇 차례를 허용하고 그 밖의 다른 선거에서는 1회만 허용해 왔으나 이는 선관위의 내부 지침일 뿐 횟수에 대한 명문의 제한규정이 아니어서 항상 논란이 돼왔다.

가수나 전문예술인을 초청해 축가나 초청공연을 갖는 것도 기부행위다. 대신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축가를 부르거나 합창을 하는 것은 무방하다. 의례적인 내용의 축사·격려사는 가능하지만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을 지지·선전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가수가 ‘친구’라며 노래를 부르게 하거나 축사를 하면서 출마예정자를 추켜세운 사례가 적지 않다.

똑같은 사안에 대해서 선거법 위반이라는 판단이 내려진 경우도 있지만 무사히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이래저래 위험한 출판기념회가 난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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