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수사 정당하다’ 증명 위해 사비 털어 소송 준비
수십차례 조정 · 심리 반복, 4년여 만에 고등법원 승소

   
지난 17일 대전고등법원 제2민사부(재판장 이인복 부장판사)는 충북지방경찰청 수사과 기동수사대 직원 20명이 MBC와 시사매거진2580 담당 오모기자를 상대로 제기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피고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대로 피고는 원고에게 6천5백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이 판결은 경찰 역사상 전례를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며 방송권력에 맞선 일선 충북 경찰의 기개와 용기를 입증한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경찰이 언론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상대가 언론이라는 이유로 ‘윗선’의 압력 등에 의해 재판과정에서 유야무야 합의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경찰조직의 특성상 언론, 특히 중앙 방송언론과 법적 시비를 가리는 일은 보복성 보도 등  득보다 실이 많기 때문이다.

경찰이 언론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4년여에 걸친 지리한 법정 다툼 끝에 승소를 이끌어낸 정승규 변호사에게 시선이 모아 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변호사 또한 언론을 만만히 볼 수 없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실제 2001년 3월 25일 MBC의 보도 이후 충북청 기동수사대가 소송을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당시 기동수사대 관계자가 7~8명의 변호사를 접촉했으나 이런 저런 핑계로 모두 사건 수임을 거절 당했던 것이다.

다른 변호사들이 모두 기피하던 이 소송을 정승규 변호사는 기꺼이 맡았고 소송비용 또한 인지대 한 푼 받지 않고 무료 변론을 준비했다.

“민사소송은 청구금액에 비례해 소송비용이 계산되기 때문에 만만치 않죠. 당시 기동수사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사건을 들여다 보니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는 확신이 들더군요. 선임료를 포기하고 소송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정 변호사도 처음엔 만만치 않았다. 우선 원고(기동수사대 경찰관)들 중 소 제기를 달가워하지 않는 직원도 있었다. 중앙 방송사와 소송을 벌이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컸던 것이다.

“기동수사대 현판이 클로즈업 되는 등 충북경찰의 명예가 싸잡아서 땅에 떨어졌는데 한 사람이라도 소송에서 빠지면 의미가 없는 사건이었어요. 소극적인 직원을 설득하는 한편 경찰조직상 예상할 수 있는 윗선의 압력을 막을 방법을 찾아야 했죠”

그래서 택한 것이 20명의 원고 전원에게 소 취하를 포함한 소송의 모든 권한을 정 변호사에게 위임한다는 위임장을 받는 것이었다.

이 위임장은 소송 과정에서 실제 큰 힘으로 작용했다.
적당히 하고 취하하라는 직간접적인 윗선의 압력에 위임장이 바람막이가 됐던 것이다.

사건 또한 단순하지가 않아 정 변호사가 작성한 준비서면만도 몇 백 페이지에 이를 정도로 복잡한 사건이었다.

2001년 4월 시작한 소송이 지난해 8월에야 1심 재판이 마무리 됐다. 1심의 결과는 원고 20명중 사건 담당 경찰관이었던 신지욱 경사(현 청주동부서 강력4반장)에게는 800만원, 나재형 기동수사대장(현 제천서 수사과장), 이장표 경사(현 사이버수사대) 등 나머지 19명의 당시 기동수사대 경찰관들에게는 각각 3백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것이었다.

MBC 측은 즉시 항소 했고 10개월의 심리 끝에 항소심에서 마져 항소를 기각, 1심과 같은 판결이 내려짐으로서 4년여에 걸친 지루한 소송은 끝이 났다.

정 변호사는 “개인적으로도 무척 의미 있는 소송이었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보편적인 진리를 다시한번 확인하게 됐다. 이번 소송이 구조적 역학관계에 밀려 약자가 피해를 보는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사회의 중심을 잡아줄 ‘권력’이 아닌 ‘권위’가 있어야 한다. 성토하고 능멸하고 깍아 내리는 것이 능사인 시대는 지났다. 그래야만 선량한 시민도 보호 받고 법의 권위도 설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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