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욱 수곡중학교 교사

▲ 한영욱 교사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조카의 새 책가방을 멘 사진을 받았다. 사진 아래에 ‘할인하는 곳에서 만원에 샀어~! 한주가 고른 거야~’ 동생이 보낸 문자였다.

아동용 책가방을 판매하는 매장을 유심히 살펴보면,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 그림이 그려진 알록달록한 가방을 고른다. 보통 이런 가방들은 크게 비싸지 않다. 하지만 어른들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고가의 브랜드 제품이 어른들의 취향에 맞는 세련된 디자인과 다소 과장된 인체공학적 기능을 내세워 ‘생애 첫 가방인데...’하는 부모의 마음을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화점 매장을 진열한 아동의류와 신발들도 대개 그렇다.

경제학자 쇼어(Schor,J.B)는 미국의 소비문화를 연구한「Born to Buy」(2005)라는 책에서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극도의 ‘소비문화’가 이제 아이들에게 시선을 돌리고 있다고 경종을 울렸다. 우리나라도 이미 ‘아동·청소년 소비자’를 과녁으로 삼는 브랜드 시장은 거대하게 형성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깜짝 놀랄만한 고가의 수입 제품들이 많다는 점이다.

부모의 허리를 휘게 한다는 의미의 ‘등골’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등골 책가방, 등골 패딩’은 고가의 수입 유명 브랜드일수록 불황 속에서도 매출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는 어른들의 과시적 소비가 자녀에게까지 확산되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과시적 소비문화는 아동과 청소년의 생활 속에 ‘차별화하는 비교’를 끌어들인다. 어른들에게 ‘된장녀, 명품족’이라는 말이 다소 부정적 의미를 내포한 것과 대조적으로 최근 중·고등학교 교실에서 학생들은 값비싼 제품을 소유한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직·간접적으로 배제하고 스스로를 구별 짓고 있다.

청소년들이 너도나도 고가의 패딩 점퍼를 사달라고 조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른들 스스로 지갑을 열어 사준 비싼 물건들이, 이제는 강제로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하고 있는 것이다. 무서운 자본의 논리다.

쇼어는 ‘소비문화’로부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법과 정책으로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불건전한 기업, 상업 광고와 미디어의 학교 침투와 같은 현상을 규제하고 막아야 하며, 어른들이 함께 연대하여 잘못된 소비생활에 젖어들지 않도록 대안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는 당장 3월에 입학할 아이의 책가방을 사야한다.

아동의 소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친구나 대중매체지만, 동시에 합리적인 면은 부모로부터 가장 많이 배운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소비에 관한 가족과의 의사소통이 많을수록, 부모가 합리적 소비생활을 보여줄수록 유행에 대한 추구를 적게 한다는 것이다.

비싼 메이커에 으쓱하는 마음도, 남들이 무시하면 어쩌나 공연한 눈치도 아직은 어른의 마음일 뿐이다. 처음으로 책가방을 매고 쑥스럽게 웃던 날, 새 신발에 가뿐가뿐하던 발걸음, 깨끗한 노트와 필통을 사서 나오던 설레임. 물건을 구입하는 일이 우리 자녀들에게 언제나 이렇게 일상의 소소한 기쁨이 될 수 있도록 학부모로서 첫 물건을 사는 마음가짐에 대해 고민을 해보았으면 한다.

여기서부터 ‘등골’ 브랜드의 횡포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지켜내는 일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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