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진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미조직비정규부장

삼성전자 반도체에서 일하다가 백혈병 등 희귀병으로 죽어간 노동자들의 실화를 담은 ‘또 하나의 약속’이 2월 6일 개봉했다. 영화는 이미 제작과정에서도 투자자들이 투자를 꺼려해 제작두레라는 형태의 자발적 모금이라는 기적을 만들었다. 언론에서 홍보가 막혔지만 시사회 호평은 물론 팟캐스트 영상 조횟수가 150만이 넘을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많은 관심과 호평을 받은 영화가 메이저 상영관인 롯데, CGV, 메가박스 등에서는 예매 오픈이 열리지 않거나 최소 수준에서만 상영관과 스크린이 제한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심지어는 예매링크가 열렸다가 다시 내려지면서 예매한 관람객들이 항의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실제로 포항 롯데시네마에서는 단체로 예매했는데도 다음날 상영관으로부터 상영 취소 통보를 받았다.

청주지역에도 2월 초까지 예매를 오픈한 극장이 없다가 롯데시네마와 청주CGV에서 일부 예매 링크가 열렸다.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은 ‘또 하나의 약속’ 영화가 대중적으로 상영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청주CGV에 대관을 하고 단체관람을 추진했다. CGV 관계자는 처음엔 유선 상으로 대관을 문의할 때 사전행사도 가능하고 사전행사에 필요한 빔프로젝트 및 마이크까지 대여해주겠다고 했다.

금속노조는 영화관람 사전행사로 실제 영화의 내용인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산재인정 투쟁을 하는 반올림과 최근 삼성을 상대로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파업투쟁을 하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을 초청해 말하는 시간을 가질 계획이었다. 그런데 대관을 결정하기로 한 날 CGV에서는 전화로 “갑자기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다”며 “사전행사는 절대 불가하다”고 입장을 바꿨다. 게다가 자신들은 12일까지만 상영할 계획이라면서 13일 대관도 안 된다고 밝혔다.

영진위 발표에서 ‘또 하나의 약속’은 개봉을 앞둔 영화 중에서는 예매율 1위를 기록했다. 좌석점율은 1위, 관객수는 5위를 차지할 정도의 티켓파워가 있는 영화다. 하지만 메이저 상영관들은 광고주인 기업의 눈치를 살피며 상영관과 스크린 수를 불합리하게 축소하고 있다.

이전까지 상영관들은 예술영화를 비롯한 독립영화와 교차상영하거나 스크린을 줄이는 이유를 관객이 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장의 논리로 관객들이 영화의 선택의 폭을 제한한 것이다. 그러나 ‘또 하나의 약속’은 오히려 그들의 주장과 반대의 현상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박철민은 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거대한 자본인 삼성의 폭압에도 불구하고 산재인정 싸움을 이어갔다. 영화가 만들어지고 많은 관객들이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는 바로 그 약속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메이저 상영관들이 최대의 광고주인 보이지 않는 손, 삼성 눈치를 보면서 스크린 수와 상영관 수를 제한하고 있지만 바로 우리 관객들의 힘으로 황상기 아버님이 딸 故 황유미에게 다짐한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자발적 관람을 늘리고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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