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혜정 충청북도 여성정책관

오늘 저녁은 여성정책관실을 챙기셨던 부지사님과의 송별 회식이라 특별했다. 식사와 함께 하는 몇 잔의 술도 그리 과하지 않았다. 커피와 함께 저녁시간을 마무리하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소주 몇 잔으로 하루를 정리할 때가 많다. 과거의 나와 비교하면 절대로 가능하지 않았던 일들을 하며 하루를 지내는 셈이다.

학교와 집을 오가며 연구와 강의에 쫓기듯 살았던 것과 달리 요즘은 뭔가 느슨해졌음을 느낀다. 주말에는 정신줄을 놓고 종일 잠만 자기도 하고, 메일이나 기사 확인하는 일을 미루기도 한다. 나름 비판적이었던 사회의식도 무디어져 두렵기도 하다.

회식 후 집에 와서 집어든 경향 신문(2월 10일)의 <최장집 교수 “정치참여 할 시간에 더 공부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기사는 오래 만에 뵙는 교수님의 사진이 일단 반가워 읽었다. 교수님의 과거 현실정치 참여 경험에 대한 대중의 질문에 교수님은 그 시간에 더 공부와 연구를 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라고 응답하셨단다.

80년대 필자가 만났던 그 때와 달리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셨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기사의 마지막 문단을 읽을 때까지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공부가 무엇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단지 ‘학문과 지식의 사용은 공익에 봉사이며 지식인의 역할은 정치와 사회에 대한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관찰자, 이성적 합리적 판단을 통한 정치에 대한 심판관’(축구경기에서 축구선수를 따라다니며 관찰하는 래퍼리처럼)을 위해 공부하신 듯하다.

필자가 그 자리에 참여하지 않았으니 강연 내용을 숙지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싶다. 교수님이 생각하는 현실참여란 무엇인지, 공익에 봉사하는 공부란 어떻게 하는 것인지, 그리고 축구심판관은 축구를 한 번도 안 해 보았을지 등등이다.

과연 우아하게(?) 관찰자로서 공익에 봉사할 수 있는 연구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다. 학자가 살피는 현실은 어디까지인지도 궁금하다. 교수님이 현실참여 정치를 잠깐이라도 하셨기에 이런 강연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필자가 생각하는 공부(工部)는, 장인들이 갈고 닦아 나누는 작업이다. 섬세하게 무엇인가를 만들고 다듬는 활동을 통해 다양한 세상과 인간에 대한 지도가 만들어진다.

또 각자의 영역에서 공을 들여서 분류하는 작업을 통해 사람들은 소통할 수 있다. 제도화된 정치 경제 사회영역 뿐 아니라 공부를 통해 새로운 영역이 정돈되면서 자신도 분류되고 타인도 분류되면서 새롭게 만날 수 있다.

단 수많은 공감과 신체훈련을 통해 장인이 되듯이 몸과 몸이 만나는 과정을 통해 문제가 무엇인지 해결방안을 제기할 수 있는 공부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교수님이 비판하는 현실참여정치를 통해서 정치이론이 연구될 수 있다. 현실참여의 안과 밖을 넘나들 때 공부가 더 잘 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연속시리즈 <문화의 안과 밖>이라는 강연이었다면, 교수님의 현실참여 정치를 통한 정치학을 위한 새로운 공부내용과 방법이 그날 토론되어야 한다고 감히 말한다. 교수님이 제안하신 경험적 사실추구에 기초하여 진실을 탐구하고 추구하는 열정, 도덕과 닿아있는 비판적 이성, 실천적 지혜. 절제의 지혜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 궁금했다.

필자는 공무원 조직참여를 통해 요즘 너무 많은 공부를 하고 있다. 절대로 책을 통해서는 일지 못했던 조직의 결속력 그리고 남성조직에서 살아남는 법을 몸으로 배우고 있다. 사람들의 느끼한 욕망도, 살아보겠다는 권력의지도 공기처럼 느낀다.

또 하루 24시간이 기억할 수 없는 의미없는 일로 총알처럼 빨리 지나가는 것에 자주 놀란다. 특히 필자가 중요하게 주장했던 수많은 것들이 어떻게 신기루처럼 사라지는지도 알았다. 그러나 몸으로 하는 공부를 통해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야 할지, 다시 공부의욕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최고의 소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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