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강신주의 감정수업>

이병수
청주문화재단 문화예술부 차장

며칠전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기차역에서 책 한 권을 샀다. 기차간에서 책을 읽으며 ‘세 시간 여행’을 해보자는 심산도 있고, 역의 구내서점 구경도 할겸 찾아 들어갔다. 노란 색을 겉장에 입힌 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강신주의 감정수업>이다.

“무엇보다도 감정이 먼저 움직여야만 합니다. 그래야 어떤 사람, 어떤 사물, 그리고 어떤 사건이 우리 시선에 의미있는 것으로 들어올 수 있으니까요. 감정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떤 것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겁니다.그렇기 때문에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한 채 만났던 것들은 우리의 기억에 별로 남아있지 않습니다. 행복했거나 불행했던 유년시절이 자신도 모르게 떠오르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요? 그건 어린 시절 우리의 감정은 정말로 호수를 뛰어오르는 송어처럼 살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점점 팍팍해지는 현실앞에서 좌절과 우울, 절망을 겪게 된다. 그만큼 행복에서 멀어지게 되고, 보다 더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기 쉽다. 가뜩이나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가기를 강요받는 현실에서 말이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철학자 스피노자를 이 책으로 불러들였다. 누구나 겪게되는 ‘감정의 쓰나미’를 ‘구원’하는 것은 인간의 고유한 감정을 적대시했던 칸트의 (순수)이성이 아니라 ‘감정을 긍정하고 지혜롭게 발휘하는 스피노자의 이성이라고.

▲ 제목: 강신주의 감정수업 지은이: 강신주 출판사: 민음사
철학자들 중 거의 유일하게 ‘이성의 윤리학’이 아니라 개개인의 감정에 주목한 ‘감정의 윤리학’을 옹호한 스피노자, 그 출발점은 단순하다. “타자를 만날 때 우리는 기쁨과 슬픔 중 어느 하나의 감정에 사로잡힌다.” 그리하여 “슬픔과 기쁨이라는 상이한 상태에 직면한다면, 슬픔을 주는 관계는 제거하고 기쁨을 주는 관계를 지키라.”고 충고한다.

기억이 생생했던 어린 시절은 다양한 감정과 꿈들이 생동하였기 때문에 오랜 기억을 갖게 되었지만, 어른이 되면서 감정을 억누르거나 죽이는 기술을 ‘얻었기’ 때문에 별로 기억나는 게 없어졌다는 게 그 증거라고 지적한다.

“억압되다 못해 이제는 거의 박제가 되어 버린 감정을 회복해야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한 번 뿐인 삶을 제대로 영위하기 위해서지요. 감정이란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감정이 없다면 삶의 희열도, 삶의 추억도, 그리고 삶의 설렘도 없을 테니까요.”

이 책에는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에서 뽑은 비루함, 자긍심, 경탄, 경쟁심, 야심, 사랑, 대담함, 탐욕 등 48가지 감정을 투르게네프의 소설 ‘무무’를 비롯한 48개 소설에 접목시키며 감정 개념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편집보는 재미도 만끽하는 <감정수업>

모파상의 장편소설 ‘벨아미’는 ‘야심’편에 등장한다. 자신의 출세와 성공을 위해 여성성을 이용하는 뒤루아를 통해 19세기 최고의 도시 파리에서 외모지상주의에 빠진 여성들과 성공에만 눈이 먼 남성들이 펼치는 화려하지만 덧없는 군무를 묘사한 작품이 ‘벨아미’이다.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하여 ‘야심’에 대하여 이렇게 경계한다.

“야심은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불특정 다수들로부터 시기와 관심, 그리고 찬양과 찬탄을 받으려고 한다. 나를 찬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를 찬영하기만 하면, 우리는 쓰레기와도 같은 사람도 보석으로 둔갑시킬 수 있으니까 말이다.

직급이 높아질수록 우리의 야심은 더 커져만 간다. 그러면 진짜 위기가 다가오는 것이다. 더 위험한 것은 야심이 커질수록 너무나 다양한 감정들,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감정들이 모조리 고사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야심은 아카시아나무와도 같다. 너무나 생명력이 강하고 뿌리가 깊어서 주변의 다른 나무들을 모조리 파괴한다.

그렇지만 아카시아 꽃향기는 어찌나 매혹적인지! 야심은 적절히 통제해야만 한다. 그럴 때에만 우리의 마음 속에 다른 수많은 감정들도 자기 곁을 따라 제대로 자라날 수 있고, 그러면 우리는 그만큼 행복에 다가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사실 많고 많은 책 중에 눈요기로야 화보와 사진집 만한게 없다. 그린 이와 찍은 이의 눈과 프레임을 빌어 내가 가보거나 경험해보지 않았던 공간, 시간, 현장을 맛보며 또 다른 상상력을 자극해서이다. 이 책의 또 하나 미덕이 여기에 닿아 있다. 클레, 르동, 쇠라, 마그리트, 마티스, 샤갈, 브루벨, 뭉크, 김정욱, 보나르, 루소, 모딜리아니 등 예술작품이 48개의 감정 주제에 맞춰 실려있다. 각기 다른 ‘감정’이 느껴지는, ‘책 속의 특별전시’라 해도 지나침이 없는 묵직한 편집 내공이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