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우물터인가, 전쟁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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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우물터인가, 전쟁터인가?
  • 충북인뉴스
  • 승인 2014.01.24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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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가벼움과 생존의 무거움을 그린 <충청도의 힘>과 <미생>
연규상 열린기획 대표


연말연초, 두 권의 책을 읽었다. 한 권은 한없이 가벼웠고, 한 권은 한없이 무거웠다. 나는 이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해 똑부러지게 설명할 재간이 없다. 다만, 이 두 권의 책 앞에서 스스로를 무장해제함으로써 나의 행복과 초라함을 드러냈다고 고백해야겠다. 행복과 질투. 내가 가장 먼저 느낀 가벼움과 무거움의 정체는 아마 그것이었으리라.


한없이 가벼운 일상, <충청도의 힘>

여기 <충청도의 힘>이 있다. 영화 ‘강원도의 힘’ 후속작이 아니다. 막상막하인 영호남의 정치 판세를 가름할 캐스팅 보트의 힘도 아니다. ‘영충호’ 이야기는 더욱 아니다. 웃음과 눈물의 힘이다. 웃음과 눈물이야말로 가장 격렬한 공감이 아니던가.

이 책의 주인공은 많이 배우고 잘나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평생 단 한 번도 주목받지 못한 충청도의 시골 어르신들이다. 그들이 풀어 놓는 능청스러운 사투리 속에는 비수보다 날카로운 통찰이 숨어있다. 복잡한 세상사가 그들의 말 한 두 마디에 두부모처럼 가지런히 잘리고, 바위처럼 무거운 삶도 일순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지루한 일상을 견뎌 일생을 건너온 사람들이 빚어내는 사소함의 힘이다. 일상은 삶의 애환이 담긴 깊은 우물이 되고, 사투리는 버거운 삶의 두레박을 들어올리는 도르래가 된다.

▲ 제목 : 충청도의 힘지은이 : 남덕현출판사 : 양철북
별거 읍다니께? 그란 줄만 알구 살믄 되는 겨!”

저자의 장인어른은 ‘영원회귀’라는 니체의 알쏭달쏭한 개념을 단칼에 베어버린다. 그 칼을 맞은 독자는 공포에 휩싸이지만 곧바로, 뼛속까지 스며든 독소가 빠져나가며 치유가 시작된다. 상처는커녕 흉터 하나 남지 않는다. 이야기 한 편을 보자.

사람을 얼렸다 녹였다 황태 취급을 하는 초봄. 코감기에 걸린 저자가 약국에 간다.

“워째유?”
백발이 성성한 약사가 ‘어디가 어떻게 아파서 왔냐’는 말을 단 세 마디로 끝낸다.
“코가 막히고 열도 좀 나고요…. ”
“죙일 막혀유? 아니믄 질이 나기두(코가 뚫리기두) 하는규?”
“막혔다 뚫렸다 해요.”
“들락날락한다는 건디…. 밤에 특별히 맥히쥬? 낮은 좀 들허구”

조제약도 아닌데 꽤 꼼꼼히 캐묻는다.

“목구멍으루두 넘어가유?”
‘뭐가요?“
“콧물이유…. 밥인 줄 알았슈?”

약사는 잠시 등을 보이고 약 더미를 뒤지다가 휙 돌아서서 재차 묻는다.

“근디, 콧물 색깔은 어뗘유?”
“예?”
“누런 코유, 아니믄 멀건 코유?”
“뭐, 반반이겠죠?”
“반~ 반…. 반~~반.”

약사가 노래 부르듯 혼잣말로 ‘반반’을 되뇌이며 약을 고른다.

‘첨엔 씨게 조지야 되니께 두 알씩’ 먹으라는 처방을 받고 공짜 마스크까지 받아든 채 약국문을 나서는데 뒤에 앉아 있던 어르신들이 수군거린다.
“누런 코허구 멀건 코가 반반이랴, 반반.”
“반반이 뭐여, 반반이…. 양념 반, 후라이드 반두 아니구.”
“그러니께, 지 코두 지가 모르믄 워쩌자는 겨.”

한없이 무거운 생존, <미생>

▲ 제목 : 충청도의 힘지은이 : 남덕현출판사 : 양철북
<충청도의 힘>이 충청도 시골 어르신들의 일상을 다뤘다면 <미생>(9권)은 대기업에 입사한 직장 초년생의 치열한 생존을 그린다. <미생>은 <이끼>로 유명한 윤태호의 신작 만화이다. ‘직장 초년생의 사회 적응기’라는 낯익은 소재를 깊고 치밀하게 다룬다.

<미생>은 각 장마다, 1989년 중국의 녜웨이핑과 조훈현이 맞붙었던 제1회 응씨배 결승전 대국을 병치하여, 촌철살인의 기보와 함께 살얼음판 같은 직장 생활의 긴장과 압박감을 펼쳐보인다. 바둑에서는 두 집을 만들어야 ‘완생(完生)’이라 말한다. 두 집을 만들기 전은 모두 ‘미생(未生:아직 완전히 살지 못한 말)’이다. 사회라는 거대한 바둑판은 ‘죽느냐 사느냐’의 비정한 전쟁터가 된다. 직장인들은 전쟁터를 떠날 수도 없다. 바깥은 지옥이기 때문이다.

두 집을 짓지 않고서는 끝내 내려올 수 없는 ‘미생’의 삶이 드넓은 바둑판 위에서 장엄하게 펼쳐진다. 때로는 실리를 위해 치욕을 무릅쓰고, 때로는 명분을 위해 허세를 부린다. 주인공 장그래의 이름은 ‘언제나(장) 좋다(그래)’는 무한 긍정과 ‘장 그렇다’는 무한 반복을 동시에 함축한다. 긍정도 부정도 할 수도 없는 이 딜레마가 생존의 무게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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