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복 사건’ 발생부터 ‘조선일보 패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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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복 사건’ 발생부터 ‘조선일보 패소’까지
  • 충북인뉴스
  • 승인 2004.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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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소송 공방 5년만에 1심 판결…형사소송 항소심에 어떤 영향 미칠까

서울중앙지법 민사25부(부장 김상균)는 16일 이승복군 사망 기사가 오보라고 주장했던 김주언 언론재단 연구이사와 김종배 전 미디어오늘 편집국장을 상대로 조선일보가 제기한 1억원씩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조선일보 기자가 현장에 있었고 이승복군이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지만 김 이사와 김 전 국장의 주장도 사실로 믿을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보인다”는 취지로 이같이 판결했다.

그러나 앞서 2002년 9월3일 서울지법은 조선일보가 민사소송과 함께 제기한 형사소송에 대해서 김주언 이사와 김종배 전 국장의 명예훼손 혐의를 인정, 각각 징역 6월과 10월의 실형을 선고한 바 있다.

이어 항소심 재판부는 애초 지난 1월29일 판결을 내릴 예정이었으나 심리 미진을 이유로 선고 공판을 사실상 무기한 연기한 상태다.

재판의 핵심 쟁점은 1968년 12월9일 밤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에서 남파 무장간첩에 의해 이승복군(당시 9세)이 죽임을 당했을 당시, 조선일보 12월11일자에 실린 <”공산당이 싫어요” 어린 항거 입찢어>라는 ‘문제의 특종기사’를 송고한 강인원 기자가 사건 다음날인 10일 실제로 현장 취재를 했느냐의 여부를 두고 형성됐다.

김 이사와 김 전 국장측은 △조선일보 기자를 제외하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다른 취재기자, 군인, 경찰, 주민 가운데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을 들었다는 사람이 없고 △유일한 생존자인 이승복군의 형 학관 씨(사건 당시 15세)는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돼 사건 발생 한 달 후에야 기자들과 처음 만났다고 증언했으며 △조선일보 보도의 현장 정황 묘사가 타사 보도와 다른 점이 많고 이중 일부를 이튿날 보도에서 바로잡았다는 점 등을 들어 조선일보 강인원 기자가 아예 현장 취재를 하지 않고 작문을 해서 기사를 보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측은 재판과정에서 “조선일보의 현장취재를 웅변해주는 결정적인 팩트”라며 1968년 12월10일 사건 현장에서 촬영했다는 사진 15장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조선일보는 “전 언론사와 국회도서관 등을 순회하며 관련 사진 자료를 찾았으나 당시 현장사진을 보관하고 있는 곳은 조선일보 뿐이었다”며 “현장에 가지도 않고서 당시 신문에 사진을 보도하고 30여년간 필름을 보관했을 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측은 △이들 사진에 경향신문 이봉섭 사진기자의 취재 모습이 담겨 있고 △경향신문에 보도된 사진과 비교할 때 동일한 인물이 등장하면서 촬영 각도만 약간 다르다는 점과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해 볼 때 당시 조선일보의 강인원 기자, 노형옥 사진기자, 경향신문 이봉섭 사진기자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취재를 했다는 사실이 입증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측은 또 △노형옥 사진기자가 법정에서 “조선일보에 난 사진은 내가 현장에서 찍은 게 맞고, 현장에는 강인원 기자와 동행했으며 거기서 경향신문 이봉섭 사진기자를 만난 것으로 기억한다”고 증언했고 △이봉섭 사진기자는 “현장에서 조선일보 기자를 봤는지는 기억에 없다”고 하면서도 “조선일보가 제출한 사진은 내가 찍은 사진과 분명히 다르다”고 말한 점이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이사측은 재판과정에서 조선일보가 사진을 보관하고 있다고 해서 현장취재 사실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해 왔다.

김 이사측은 △조선일보는 해당 사진을 제출하면서 강인원 기자가 찍은 것이라고 했으나 포토저널리즘학회 감정 결과 강인원 기자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고 강인원 기자도 2차 증인 심문에서 이를 인정했으며 △사진에 등장하는 경향신문 강한필·이봉섭 기자는 12월10일 현장 취재 당시 조선일보 기자를 만난 적이 없다고 증언할 뿐 아니라 조선일보 강인원 기자도 취재 도중 경향신문 기자들을 만나지 않았다고 한 점 등을 비추어 문제의 사진은 조선일보 기자가 아닌 제3의 인물이 찍은 것으로 보인다는 반론을 폈다.

김 이사측은 해당 사진들이 증거능력이 없을 뿐 아니라 이외에 조선일보 기자가 현장에 가지 않았다는 증거와 객관적인 정황은 매우 많다고 주장했다.

즉 △강인원 기자는 타사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해 혼자 30분 동안 취재해 다른 기자를 볼 수 없었다고 주장하나, 여러 기자들이 같은 시간에 경찰 브리핑을 받은 뒤 출발한 점에 비춰 설득력이 없고 △군·경측 사진사가 최초 사진을 찍은 12월10월 낮 12시쯤 이미 마당에 시체가 수습돼 있었는데, 12시30분에 도착했다는 강인원 기자가 시체를 볼 수 없었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으며 △당시 한국일보 박주환 강릉주재기자가 인터뷰에서 강인원 기자가 강릉에서 전화 송고를 하는 것을 목격했고 조선일보 송종헌 강릉주재 기자(사망)로부터 “조선일보 기사는 만들어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한 점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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