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가는 비싸게…‘할인차액만큼 돌려준다’, 농민유혹
군 보조사업 먹잇감 전락 … 일부 농협, ‘결탁 의혹도’

▲ 청주시 소재 모 농기계판매 대리점. 이 대리점 관계자는 일정한 할인금액을 제시하고 할인된 금액만큼 돌려 줄 수 있도록 서류상으로 처리를 해준다며 물품구매를 선전했다.

지자체가 농민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농기계구입 보조금 지원 사업의 허술한 실태가 고스란히 확인됐다.  농기계를 판매하는 영업상들이 정부지원금을 악용해 정가를 부풀리고 농민에겐 할인이라는 형식으로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

2013년 청원군을 비롯한 도내의 지자체들은 농업인 지원사업의 일종으로 농기계를 구입할 때 50%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농작업 환경개선 편이장비 지원사업’이라는 명칭으로 시행된 이 사업을 통해 청원군에서만 450여 농가에 3억117만원의 예산이 집행됐다.

농민들은 군의 지원을 받아 동력제초기, 동력운반차, 각종 건조기, 관리기등을 구입했지만 사업을 점검해 본 결과 곳곳이 허점 투성이었다.

청원군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A 씨는 지난 해 분통이 터졌던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다. 군의 보조를 받아 농협을 통해 자신이 구입한 농기계가  터무니없이 부풀려져 있던 것이다. 2011년 A 씨는  청원군 보조를 받아 1.7㎡ 용량의 건조기를 자부담 150만원과 군 보조금 150만원을 주고 구입했다. 구입방식은 농협을 통해 구입했다.

그러나 A 씨는 1년 뒤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012년 이웃해 있는 또 다른 농가가  같은 회사제품 3.3㎡ 용량 건조기를 250만원에 구입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용량에 따라 가격이 비례하는 것에 견주어 보면 A 씨는 2배 정도 높은 가격으로 구입한 셈이다.

청원군 옥산면에 농지를 구입하고 약간의 농사를 지며 귀농을 준비하고 있는 직장인 B씨도 널 뛰듯 천자만별인 농기계 값에 혀를 내둘렀다. B 씨는 지난해 고추건조기를 구입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었다. B 씨가 대리점을 통해 최초 알아본 고추 건조기 가격은 150만원이었다. 깍아 달라는 B씨의 부탁에 대리점 관계자는 20만원을 할인해준다고 했다.

B씨는 다시 농사를 짓는 지인을 통해 대리점에 알아본 결과 가격은 다시 내려가 90만원까지 내려갔다. 다시 공무원으로 있는 지인에게 회사에 직접 부탁한 뒤에 최종 70만원에 구입했다. 반면 B 씨가 구입한 동일 제품에 대해 군 보조금으로 모 농협을 통해 구입한 가격은 150만원이었다.

대리점 제안, “뒤 탈 없게 서류처리”

왜 똑같은 물품을 구입하는데 정부보조를 통해 구입하는 것과 직접 구매하는 가격이 차이가 날까? 이에  위 농기계를 판매하는 청주 모 대리점에 직접 제품 구매를 시도해 보았다. 이 관계자는 180만원대의 제품을 소개했다. 정부의 농가지원 여부에 묻자 절차에 대해 친절히 소개했다. 그리고 농가지원 보조금을 받지 못할 경우 “미련을 두지 말라”는 충고를 했다.

제품 할인에 대해 질의해보았다. 이에 이 관계자는 소개한 제품에 대해 20만원 정도의 할인 폭을 제시했다. 다시 300만원대의 제품에 대해 문의해보았다. 이에 대해 약 40만원의 할인 폭을 제시해줬다.

정부 보조금을 받을 때에도 이 할인금액을 보전해 줄 수 있는지 물어 보았다. 이 관계자는 당연하다고 말했다. 서류상으로 번거롭지만 서류상 완벽하게 처리해준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리점 관계자는 농기계의 유통 마진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생산회사가 공표한 판매가와 대리점 공급가 사이에 상당한 차액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이것을 유통마진이라 호칭했다. 공급회사별로 차이가 있으며 대리점 유통마진이 높게 보장하는 회사는 50%에 이르기도 한다고 했다. 그리고 보통의 기업은 대리점에 보장해주는 유통 마진은 20% 내외라고 말했다.

이렇게 농기계회사가 군 보조사업을 악용해  판매가를 부풀리고 뒤에서 할인을 제안하며 이득을 보고 있지만 이를 관리하는 지자체의 실태는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청원군 농정과 관계자는 “‘농작업환경개선 편의장비지원사업’을 통해 구입하는 농기계 선택은 전적으로 농가에 맡기고 있다”고 밝혔다.  군이 특정제품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군이 특정회사의 제품을 언급하면 큰일이 난다. 반발이 크다. 군은 농기계협동조합을 통해 확정이 된 제품이면 된다”고 설명했다.

군 관계자는 관리방법에 대해 “지원을 받은 농민이 관련 자료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이 서류에는 세금계산서, 농가에서 자부담한 금액에 대한 이체 증빙서류(통장사본), 구입한 기계의 사진을 제출받고 있다. 이를 가지고 실제 계약한 제품을 구매했는지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농기계 가격이 과도하게 부풀려 있다는 지적에 대해 “개별제품의 판매가격이 차이가 있지만 어쩔 수 없다. 농기계 협동조합에서 책정한 금액의 범위 안에 있으면 특별히 문제 삼지 않는다”며 “업체들이 영업과정에서 할인을 해준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농기계회사가 편법 영업을 통해 농민들을 불법행위로 끌어들이는 현실에 대해 군이 알면서도 방치하고 있는 것을 시인한 것이다.

농기계 회사의 담합, 국민세금 훔쳤다
공정거래위,  지난해 ‘담합 적발’ 과징금  234억 부과
비료, 농약 짬짜미 천지…농가지원으로 기업만 이득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노대래)는 지난해 5월 20일 트랙터와 콤바인, 이앙기 등 3개 기종을 생산하는 5개 농기계회사의 가격담합을 적발했다. 당시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된 국제종합기계(주), 대동공업(주), 동양물산기업(주), (주)엘에스, 엘에스엠트론(주)등 5개 회사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이들 5개회사는 2002년부터 2011년 9월까지 농기계 가격신 시 사전에 영업 본부장 모임과 실무자간의 의사 연락을 통해 트랙터, 이앙기, 콤바인 가격 인상여부와 인상률을 협의하거나 교환하는 방식으로 가격 담합을 진행했다.

이같은 담합행위가 가능했던 것은 농기계 가격이 ‘한국농기계공업협동조합’을 통해 정부에 신고하는 방식으로 운영됐기 때문이다.

이들 5개회사는 농기계 구입이 대부분 농협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도 악용했다. 농기계 제조회사들은 농협중앙회가 입찰을 통해 업체와 단가계약을 체결하면 아 가격으로 지역농협이 농기계를  판매하는 점을 악용했다.

이렇게 농기계 회사가 농기계 가격을 부풀려 판매한 만큼 고스란히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됐다. 특히 정부의 보조금 지원 사업이 이들이 신고한 가격으로 지원되는 만큼 국민이 그 부담을 떠안은 셈이다.

충북농민회 김희상 사무처장은 “농기계회사가 전직 공무원들을 영업사원으로 영입해 지자체와 농기계센터나 농협을 상대로 막대한 로비를 진행하는 것으로 안다”며 “농민이 꼭 필요한 기계가 아닌데도 농민들을 유혹해 농기계회사가 막대한 이득을 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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