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호(대전시립미술관장 )

19세기 서양미술에서남성의 신체가 은근히 드러나는 에로틱한 내용이나 주제를 시사하는 작품은 거의 없었다. 반면에 에로틱한 여성의 신체의 이미지는 남성의 일방적인 관조의 대상으로서 마치 여성에게 ‘주어진’ 것처럼 다양한 기법으로 양식화 되어 표현되었다.

다른 예술적인 이미지 재현과 마찬가지로 에로틱한 이미지의 세계도 단순한 작가의 개인적인 환상이나 상상에 의해 조절되는 것이 아닌 사회적 구축물 이기에, 이러한 남성위주의 에로티시즘이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러면 여성이 남성 화가에 의해서 어떻게 다루어지고 누구를 위하여 에로틱한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를 19세기 후기인상파 화가로 잘 알려진 고갱, 드가, 로트렉의 작품을 통하여 간단히 살펴보자.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은 서양 문화의 허위와 부조리를 비판하고, 문명의 세계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떠나 원시적인 생활의 자유와 진실을 찾아서 1891년 이후 타히티섬에서 여생을 보냈다. 그의 1899년 작품 “망고 꽃을 들고 있는 타히티의 여인들(Tahitian Women with Mango Blossoms)”에서는 우아하고 젊은 두 타이티 여인이 풍요롭게 표현된 유방 바로 아래에 꽃쟁반을 들고 서있다.

고갱에 의해 그려진 두 여인의 유방은 마치 그 것으로부터 모든 좋은 것들이 흘러나오는 과일과 꽃에 은유되면서 고귀한 미학적 예술작품의 영역에 도달한다. 그러나 하나의 에로틱한 이미저리의 구현으로서 여성을 욕망을 일으키는 대상으로서 잘 익은 과일, 꽃에 비유하고 그 것과의 유사성을 강조하는 남성의 에로틱한 연상에서 출발한 것이다.

현대생활을 그리는 고전주의 화가가 되길 원했던 에드가 드가(Edgard Degard, 1834-1917)는 오페라 무희들의 춤을 테마로 리듬과 하모니에 따라 변화하는 다양한 형태들을 묘사했다. 카페나 술집의 분위기를 관찰하고 이를 묘사한 1879년 “손님(Le Client)”도 술집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매춘부의 순간적인 행동을 포착한 작품이다. 그의 다른 작품들에 자주 나타나는 카페의 여성이나 여성 무용수들의 에로틱한 이미지도 성적인 것과 관련 있을 뿐, 그녀들의 노동(서비스업)이 객관적으로 평가되기보다는 도덕적인 기준에서 부도덕 혹은 오락이라는 부류로 이해되어 그려졌다.

뚤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은 열 일곱 살 때 “나는 이상이 아니라 진실을 행하려 한다”라고 자기 신념을 피력했다. 그는 현실고발에 관심을 두면서 매춘굴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카바레의 여성들을 그렸다. “매춘부들은 항상 박제(剝製)와 같다. 그러나 그녀들은 살아서 숨쉰다”라고 그는 말하지만 1894년 작품 “물랭 가의 살롱에서”에서는 유흥업에 종사하는 이러한 여성들의 일이 정당한 노동으로 평가되기보다는 남성 구경꾼들이 보고 시각적으로 소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그려진다. 당시 19세기 파리에서는 매춘이 정부의 철저한 관리를 받던 노동의 한 형태이었다.

결국 19세기 미술은 대부분 남성의 요구와 욕망에서 남성을 위한 여성의 이미저리 이었으므로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노동의 주체이기보다는 제외된 주변을 장식하는 것처럼 취급되었다.

여성은 남성화가의 창조적 활동을 도와주는 누드 모델로서, 남성들의 노동 후에 휴식처인 술집의 접대부 혹은 카페의 여급으로서 도덕적 기준으로 낮은 오락적 대상으로서 성적 대상으로 묘사되었다. 그렇다면 에로틱한 남성의 시각만이 존재하고, 에로틱한 여성의 시각은 결여된 것인가?

미술 비평가 린다 노클린은 “19세기에는 여성의 이미지를 재현하지 않은 에로틱미술이란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 이전과 그 이후에도 매우 드물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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