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근 주민들 “사전협의 없는 사업 용인 못해”… 거센 반발로 농림부 실사 중단 ‘소동’

제천시가 대한민국의 대표적 농업 유산 중 하나인 의림지를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하기 위한 행정 절차에 착수한 가운데, 일부 주민들이 거세게 반대하고 나서 사업 추진이 난항을 겪고 있다.

제천시는 구랍 27일 의림지의 국가중요농업유산 지정을 위해 농림축산식품부 직원과 교수 등으로 구성된 실사단의 현장 실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주민 30여 명이 실사 지역인 의림지 짐프캠프장에 집결해 실사단을 가로막고 “주민과 사전 협의 없는 의림지 국가농업유산 등재 시도를 용인할 수 없다”며 거세게 반발해 당황한 시 고위 관계자가 중재에 나서는 등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 의림지 국가농업유산 지정을 위한 현장 실사가 실시된 가운데, 이에 반발하는 주민들을 상대로 최명현 제천시장이 설득에 나서고 있다.

이날 다른 일정을 수행하던 최명현 시장은 실사단을 상대로 주민들이 항의 집회를 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급거 현장으로 출동해 반대 주민들에 대한 설득에 나섰다. 최 시장은 “의림지 못 둑 밑은 농업유산 지정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며 “오해에서 빚어진 일부 주민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의림지가 농업유산에서 배제된다면 그 손실을 누가 책임질 것이냐?”며 주민들을 설득했다.

그러나 의림지 주변 청전벌 일대의 농지 소유주가 대부분인 반대 시민들은 의림지가 농업유산으로 지정될 경우 재산권 행사 등에 대한 통제가 강화돼 지가 하락 등 경제적 손실이 초래되지나 않을까 우려하며 강경 대응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주민 A씨는 사전에 입수한 농업유산 지정지 도면을 제시하며 “청전벌도 모두 농업유산 지정지에 포함이 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최 시장의 해명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격한 발언을 쏟아냈다. A씨는 “국가농업유산 대상에는 의림지뿐 아니라 주변 청전벌 200㏊가 모두 포함돼 있다”며 “의림지 일대가 농업유산에 지정되면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고, 이렇게 되면 지가 하락 등 토지주들의 부당한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맞섰다.

B씨도 “(시가) 아무리 피해가 없다고 주장해도 시설하우스 등을 신개축할 때 법적, 행정적 제약이 불가피하다”며 농업유산 지정 철회를 요구했다.

이처럼 주민이 의림지 농업유산 지정 추진을 강력히 반발하는 데에는 문화재 시설인 의림지와 관련해 수십 년째 겪고 있는 크고 작은 규제와 시 행정에 대한 누적된 불신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 같은 반대 주민들의 우려는 혹여 있을지 모를 피해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한 기우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와 시의 설명이다.

실제로 국가중요농업유산 대상지인 의림지 일대와 청전벌 등지는 오래 전부터 농업진흥구역으로 분류(절대농지), 관리돼 왔다. 농업진흥구역 안에서는 농업생산 또는 농지개량과 관련된 행위만 가능하며, 이 지역에서 허용되는 개발행위도 농지법에 의해 엄격히 제한된다.

따라서 의림지가 국가중요농업유산에 지정된다고 해서 토지의 형질이 이 이상 강화되거나 토지 소유주의 재산권이 전보다 규제받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심사위원장 자격으로 실사단을 이끈 전경수 교수(서울대 인류문화과)는 “의림지 일대는 이미 국가 문화재로 지정된 곳으로 농업유산이 된다고 해서 다른 규제가 추가되는 일은 절대 없다”고 못박은 뒤 “이번 지정 사업은 제천시나 농림부가 정하는 것이 아니고 주민협의체가 우선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제천시 관계자도 “농업유산 지정 배경과 농지 활용 등에 따른 행정 방침은 해당 지역 통반장을 통해 이미 수차례 설명했다”며 “그럼에도 주민들이 사실과 다른 주장을 펼치며 농림부 실사까지 제지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제천 의림지의 국가농업유산 등재는 시가 지난 2012년에도 의욕적으로 추진했으나 수포로 돌아갔다. 시는 의림지가 국가농업유산으로 지정될 경우 농촌의 다원적 자원 활용사업을 통해 국가유산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로 공간의 질을 높여 고장판촉(Place-Marketing) 효과를 높이고 국가유산에 대한 가치화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에 시는 지난해 초부터 전문 용역업체에 용역을 의뢰하고 토론회와 세미나를 여는 등 사업 재추진 의지를 강력히 내비쳤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