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정 충북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

▲ 최윤정
2013년 세밑, 우리는 체포영장을 들고 신문사 건물 유리창을 깨며 진입하는 대한민국 경찰과, 잠긴 문을 뜯어내기 위해 출동한 소방대원을 보았다. 저항하는 여성 시위자를 끌어내기 위해 동원된 여경들도 눈에 띄었다.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대형 에어매트를 설치하고, 출입문 빈틈 사이로 효과적으로(!) 쏠 수 있다는 최루분사기까지 갖췄지만, 정작 체포하려던 철도노조 간부들은 한 명도 잡지 못했다.

뉴스채널에서 생중계되는 화면을 보면서 지난 정부에 있었던 용산 참사 현장이 오버랩됐다. 노후된 건물의 좁은 계단엔 바리케이드로 쓰인 의자와 집기들로 어지러웠고, 신문사 건물 로비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다. 여고 시절의 추억이 담긴 광화문, 정동 거리, 그리고 구 MBC 건물을 근 30년 만에 사건 현장으로 지켜보는 마음이 참담했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됐을까? 왜 갈수록 갈등은 깊어가고 일방통행식 지시와 통제만 남았을까? 장시간 중계 화면을 보면서, 4천 명이나 동원됐다는 경찰들에게 눈길이 갔다. 그들 가운데는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공무 집행을 해야 했던 이들은 있었을 것이다. 모 주간지 기자가 현장에 있던 경찰에게 커피를 건네는 사진이 SNS 공간에서 화제가 됐던 이유도, 그 작전이 이들이 결정한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날, 박근혜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당장 어렵다는 이유로 원칙 없이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간다면 우리 경제와 사회의 미래는 기약할 수 없다”며 입장 변화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코레일 사장 역시, 파업 노동자 대신 5백명을 신규 채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으려 하는 불통 정치 때문이라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40%대로 떨어졌다고 한다. 1년 동안 그 흔한(?) ‘국민과의 대화’나 기자회견 한 번 하지 않았다는 비판 때문인지, 내년 초에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한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길었던 2013년 한 해가 저물어간다. 경제 관련 뉴스는 어느 때보다 답답한 한 해였다. 노인들에게 20만원 씩 주겠다던 공약은 경제 사정상 실현 불가능한 공약(空約)이 됐고, 경제민주화 공약 열여덟 개는 태반이 미이행하거나(10개), 후퇴(4개)했다(경실련, 박근혜 정부 경제민주화 공약이행 평가 결과, 2013.11.6.),
지난 정부의 부자 감세를 바로잡지 않는 대신, 서민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 들이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쏟아졌다.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가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되자 여론이 들끓었고, 정부는 임기 내에는 인상하지 않겠다고 후퇴했다. 조세 부담 기준선을 연소득 3450만원 이상으로 하려다가 반발이 거세지자 5500만원으로 조정하기도 했다.

남양유업 영업사원의 막말·욕설 파일이 공개되면서 대기업의 갑의 횡포 문제가 집중 부각됐고, 지역 내에서는 한 대형마트가 부당하게 계약을 해지하는 바람에 1억원이 넘는 시설투자비도 못받고 쫓겨나게 된 임차인의 사례를 통해 ‘제소전 화해 조서’의 문제점을 이슈화했다.

재벌 유통기업들이 SSM 시장에 진출한 것도 모자라, 규제법을 피해 상품공급점을 확대시키고 도매업에 진출하는 문제도 주목을 받았다. 궂은 소식 가운데 그나마 30여개 충북지역 중소상공인 단체들이 모여 ‘충북지역경제살리기네트워크’를 출범시킨 것이 2013년의 좋은 소식으로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고려대학교 학생의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한다. 여기저기에서 사실은 안녕하지 못했다고, 서로를 챙기지 못해 미안하다고 화답하고 있다고 한다. 다들 누군가 툭 건드려 주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마음속 이야기들을 털어놓고 있다. 2014년에 다시 누군가 안녕하시냐고 묻는다면, 과연 안녕하다고 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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